[인문]육당최남선의개화사상
- 최초 등록일
- 2008.03.17
- 최종 저작일
- 20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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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육당최남선의 개화사상을 살펴본 레포트입니다..
친일파로서의 모습을 부각시키기 보다 그가 가진 개화사상에 초점을 맞추어 작성했습니다.
목차
육당 최남선
1. 문명 진보 지향기 (3.1운동 이전)
2. 민족 완성 지향기 (출옥 후)
3. 친일기 (조선사편수회참가 이후)
4. 참고 문헌
본문내용
근대 개화 논의를 학자의 관점에서 살펴보기 위해, 최남선의 사상과 업적을 검토한다. 당시 대표적 문화인사였던 최남선의 개화에 대한 태도는, 당시 사람들의 행동에 정신적인 기반을 주었으리란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최남선은 초기에 문명 진보를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이는 『소년』의 발행에서 가장 두드러지는데, 이를 통해 그는 새로운 문물을 널리 알려 민중을 계몽하려 했다. 3.1운동을 계기로 민족운동가로 변모한 그는 역사학, 지리학 등의 다양한 국학 연구에 매진한다. 국학 연구는 근대적인 연구방식으로 문명의 진보를 꾀함과 동시에 내용 면에서 민족 자각의 수단이었으므로, 이전의 그의 개화 사상에 민족주의가 자연스럽게 혼합되어 민족을 위한 훌륭한 연구 성과가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사상이 어디에 좀 더 무게중심을 두었는가도 중요하다. 그는 문명 진보에 경도된 나머지 제국주의를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바람직한 제도로 생각하는 한계를 보였다. 또한 민족은 일시적인 것이고 문화는 영원하고 근본적인 것이란 그의 생각은, 결국 민족에 대한 배신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된다. 개화 사상의 근본은 민족의 생존에 있어야 했다. 일단 명맥을 유지할 수 있어야 문명과 문화의 발전이 의미가 되지 않겠는가. 제국주의자들이 속국이 된 우리 민족을 같은 세계시민으로 대해줄 것이란 생각은, 인간의 본성을 망각한 순진한 발상이다.
학자 최남선의 개화 사상
최남선(1890-1957)은 한말부터 일제시대를 걸쳐 해방 후까지 역사학, 민속학, 출판 및 신문과 잡지의 발간 등 문화·학술영역에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한 민족주의 우파계열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최남선에 대한 후대의 평가는 친일문제를 중심으로 극단적으로 나누어졌다. 1900-1920년대 활동에 강조점을 둔 연구자들은 최남선을 `신문화의 선구자’ 내지 민족운동가로 적극적으로 평가한 반면, 최남선의 활동에 비판적인 연구는 1928년 그가 조선사편수회에 참가한 시점을 계기로 ‘반민족 친일파’였음을 강조하고 있다. 다양하고 풍부한 업적과 함께, 친일 행위에 대한 논란의 대상이기 때문에 최남선에 대한 연구는 활발했던 편이라 할 수 있다. 이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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