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문화]과학적 산물인 포석정
- 최초 등록일
- 2008.03.15
- 최종 저작일
- 20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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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포석정은 단순한 놀이장이었던 것이 아니라
과학적 기술이 담긴 우리의 자랑스런 문화제입니다.
목차
1. 들어가기에 앞서
2. 포석정이란?
1) 포석정의 위치
2) 외관
3. 포석정의 목적?
1) 연회의 장소였다는 추측
2) 제사 장소였다는 추측
4. 포석정의 재해석
1) 과학적 시각으로 바라본 포석정
5. 포석정에 대한 조사를 마치며
본문내용
경주 지방의 것으로 석굴암과 불국사와 같이 그 존재에 대하여 주목받고 연구된 것은 아니지만, 무시할수 없는 유적인 포석정이다. 포석정은 중학교때 수학여행때 가본 것으로 기억된다. 경주로의 여행이었지만, 그다지 많은 유물과 유적은 보지못했고 기억에 남은 것은 거의 없다. 거의 포석정이 유일무이하다. 포석정을 설명하신 선생님은 예전 여기에는 물이 흘렀고 술잔이 돌았으며, 그곳에서 왕과 귀족들이 연회를 열었다고 하였다. 그때 나는 이곳에서 열린 연회를 상상하며 무척이나 낭만이 있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또 한가지는 왜 술잔이 뒤집어지지 않고, 목적지 까지 도달할 수 있었을까?하는 의문이였다. 결국 나는 이제 중학교때 지녔던 의문을 십년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조사하고 알아보게 되었다.
우선 포석정 자체에 대하여 알아볼 필요를 느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을 싸워도 위태하지 않다고 했던가. 포석적은 2.5km나 되는 깊은 골짜기이다. 금오산 정상에서 시작하여 북으로 향해 약 1km 흘러오다가 부엉드미 부근에서 서서히 여울목과 함치고 배식 여울을 합쳐 포석정 기슭을 씻으며 기린내로 들어간다. 포석정 일대는 성남이궁터라고 한다. 지금은 돌홈을 파서 물을 흐르게 하고 그 흐르는 물에 잔을 띄어 놓고 술잔을 주고 받던 터만 남아 있을분 그 건축에 대하여 알지못한다. 가로 5.5cm, 세로8cm의 네모난 선안에 가로로 포석이라고 음각된 문자기와가 발견되어 이 기와를 사용했던 건물이 있었음이 확인되기도 했으나 정확하게 알지는 못한다. 이곳에는 원래 큰 돌거북을 만들고 저수지에 물을 끌어다가 그 거북의 입으로 물이 나와 돌홈으로 흘러 들어가게 한 것인데 이 돌거북은 조선조 말엽 어느 부윤이 옮겨다가 자기 조상 무덤의 비석대로 사용했다고 구전되어 오고 있으나 거북의 행방은 알지 못한다고 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