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적 의미 찾기 - 그때 그사람
- 최초 등록일
- 2008.03.07
- 최종 저작일
- 20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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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야기를 다른 영화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 사람’ 속에서 비판도 있지만 대한 민국의 경제 영웅 박정희 전 대통령이 헬리곱타를 타고 국토를 시찰하러 가는 장면을 보며 한국적 경제 이야기를 이 영화를 통해 보았다고 할수 있다. 영화의 내용은 10.29사태를 중점적으로 다루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을 중점적으로 다룬 사실 하나 만으로도 한국 경제적 역사와 접목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 그때 그 사람 ’ 줄거리 와 그 안의 주인공 박정희 전 대통령이 누구인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역사 전면의 등장 전과 후의 한국 경제 상황을 살펴 보도록 하자.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영화 <그때 그 사람>의 줄거리와 해설
2.박정희 전 대통령과 그의 경제적 등장
3.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 전후의 한국 경제
(1) 경제적 혼란기(1945~53년)
(2) 한국 전쟁 후의 재건(1953~62)
(3) 박정희 전 대통령 하의 경제 성장
Ⅲ. 결론
본문내용
3.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 전후의 한국경제
(1) 경제적 혼란기 (1945~1953년)
일제 식민지배시기(1910~1945년)의 한국경제는 자본과 경영기술 및 생산기술 면에서 일본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 따라서 해방으로 인한 한일경제의 급작스런 분리와 뒤이은 38도선을 경제로 한 남북한 분단은 한국경제에 심한 혼란을 초래했다. 더구나 산업시설과 천연자원, 인구의 지역적 분포가 고르지 않았던 관계로 남북분단은 특히 남한 경제에 치명적인 것이었다.
남북분단 당시 한국 전체 총발전량의 90% 이상이 북한에 치중되어 있었고 천연자원이 풍부한 까닭에 대부분의 중공업시설도 북한에 있었다. 따라서 남북분단으로 인해 전력자원이 부족하게 되어 남한의 산업시설은 마비상태에 처해 생산능력보다 훨씬 낮은 가동률을 보여 주었다. 더욱이 이같이 공업생산량이 급격히 감소되었을 뿐만 아니라 북한으로부터 대량의 피난민이 내려오고 일본과 기타 해외지역에서 동포들이 귀국함에 따라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남한은 심한 식량부족 사태에 처해 있었다. 또한 상품의 부족과 통화량의 급속한 팽창은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초래했는데 1949년 서울의 소비자물가는 1945년에 비해 약 123배나 높아졌다.
해방과 남북분단 직후 산업생산량이 이같이 급강하했으나 그후 4년간 상당히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었다. 예를 들면 1949년의 발전량은 1946년에 비해 3배나 되었고 못 생산량은 거의 8배로 증가했다. 그러나 이같이 빠르게 생산량이 회복, 신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949년의 산업생산량은 일제 때 기록한 생산량에 비해 훨씬 낮은 상태에 처해 있었다. 종합적 자료가 없어 정확한 비교가 불가능하지만 한국은행이 발표한 제반 생산지수를 비교해 보면 1949년의 산업생산량이 1940년 수준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 것 같다.
(2) 한국전쟁 후의 재건(1953~62)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