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 감시와 처벌 감상문
- 최초 등록일
- 2008.02.25
- 최종 저작일
- 2007.04
- 2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소개글
푸코의 감시와 처벌 감상문입니다.
주관적인 의견이 다수 포진된 글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겁이 많은 편인 내가 B급 공포영화(도대체 기준은 뭔지)의 대명사 <새벽의 저주>를 본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새벽의 저주>는 한 도시 전체인구가 좀비화가 되어 생존자 몇 명이 큰 건물 안에 갖혀 탈출을 시도한다는 대략적인 줄거리를 가지고 있는 좀비영화다. 카메라의 앵글이 (아비규환이 된 도시를 헤매고 다니는) 좀비를 내려다보는 장면이 있었는데 끔직했다.
그 도시에선 오로지 그들만이 인간이었다. 다수결로 치자면 그들이 타당하고 옳은 존재들이었다. 문득 이런 이야기가 생각났다. 작은 나라가 있었다. 그 나라에는 우물이 두 개 있었는데 하나는 성 안에 다른 하나는 성 밖에 있었다. 그런데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다. 성 밖의 우물을 마시는 자들은 모두 미치기 시작했다. 성 안의 왕과 왕비는 성문을 닫고 성 안의 우물을 마시며 버텨내었지만 국민들은 모두 성 앞으로 몰려와 깔깔대기 시작했다. 결국 왕과 왕비는 성 밖의 우물을 마시고 광인이 되었고 그제서야 국민들은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단다. “신이시여, 왕을 우리에게 돌려주셨군요.”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 신촌 현대 백화점 앞의 (죄다 좀비처럼 보이는) 인파를 보며, 나는 다수결 신봉자는 아니지만 이렇게 다짐했다. “좀비가 되거나 미쳐야지”
어떤 의미에서 평등이란 타인과 같아지는 것이다. (‘눈에는 눈’ 이라는 명언(?)도 고대의 법전에서 발견할 수 있으니) 그렇기 때문에 평등은, 나같은 겁쟁이들에 한해서는 통합의 논리와 작별할 수 없는 와일드한 척도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근대 사회는 말을 탄 나폴레옹이 연신 외치듯 평등 사상과 조세핀을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다. 푸코의 논리는 이렇다. 근대의 17세기 파리 인구의 1%를 수용소에 가둔 대대적인 감금의 선풍은 어디에서 기인했는가. 그것은 이성에 바탕을 둔 권력의 전략이다. 그런데 이성이라니. 다수결의 정당성의 전제는 인간은 언제나 ‘이성적’이라는 것이 아니었나. 찬성합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