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상 관측의 역사
- 최초 등록일
- 2008.02.24
- 최종 저작일
- 20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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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기상 관측의 역사에 대하여 여러 사료적 자료들을 근거로 작성한 리포트 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고대 기상의 역사
2. 조선시대의 기상
3. 고대의 민족 기상학
4. 근대 기상업무의 시작
5. 건국 이후의 기상업무
Ⅲ 결 론
본문내용
2. 조선시대의 기상
조선시대에도 기상학적 기록은 계속되어 고려시대보다 더 다양하고 통계횟수도 많아져 조선시대가 시작된 1392년 이후 약 1세기 동안의 대표적인 기상기록은 다음과 같다. 구름 157, 바람 221, 비 홍수 256, 서리 174, 눈 67, 상고대 55, 무지개 41, 우박 453, 안개 150, 천둥502, 일혼 6, 햇무리 1191, 무설 1, 무빙 9, 이상한파 24, 이상난동 46, 지진 490, 가뭄 214회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로 들어와서는 기상학의 발달된 기록이 남아 있으며 가장 두드러진 것이 측우기의 발명이다. 세종대왕의 측우기 발명은 비단 한국 역사상의 큰 자취일 뿐만 아니라 세계 기상학사에 길이 기념할만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1441년 5월 측우기를 길이 1자 반, 원통의 지름 7촌으로 만들고, 이것을 서울에서는 서운관에, 그리고 지방에서는 객사의 뜰 가운데에 세워 강우량을 기록하였다. 그 결과 조선시대에 측우기로 관측한 많은 강우량 기록이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 심지어 1880년대 중반에 처음 간행되었던 한국의 첫 근대 신문인 ‘한성순보’와 ‘한성주보’에도 측우기로 관측한 강우량 보고가 게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훌륭한 강우량 기록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통계적으로 처리되어 발표되지 않았던 관계로 당시 국제적으로는 물론 국내적으로도 일반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었다. 그러던 차에 1907년 통감부관측소장으로 임명된 와다유지가 조선의 재래 관측기록 및 관측기기 종류를 수집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1910년 조선총독부관측소장으로 임명된 와다유지는 한국관측소 학술보문 제1호에 ‘세종 영조 양조의 측우기’라는 제목으로 정리한 자료를 불어로 발표하여 유럽과 미국 등 여러 선진국의 학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어 큰 충격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가장 오래된 강우량 기록으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참고 자료
- 근대기상 100년사 (기상청)
- 정보화 사회의 기상 서비스 (이우진, 1997 문예당)
- 측우기 (http://cyberlab.huma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