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종조 북벌론 연구 관점 비판
- 최초 등록일
- 2008.02.07
- 최종 저작일
- 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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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효종조의 북벌에 대한 자료임.
목차
서론
본론
결론
본문내용
본론
효종의 왕권 정통성 문제의 배경
인조와 서인 세력은 광해군의 이중외교와 왕위계승의 정통성을 명분으로 삼아 1623년 반정을 일으켜 정권을 잡는다. 그러나 인조와 서인 정권 역시 비정상적으로 무력을 사용하여 정권을 잡았다는 점과 조부인 선조의 종통을 손자인 인조가 계승했다는 문제점들 때문에 왕위계승의 정통성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따라서 당면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명분을 세워야만 했던 인조는 정원군을 원종으로 추숭하는 원종추숭론(元宗追崇論)의 논쟁을 거쳐 어떻게 해서든 왕실의 권위를 확보해 왕권을 강화하고 신권을 견제하고자 하는 시도를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이러한 정치적 취약점들은 인조정권이 끊임없이 모반의 위협에 시달리도록 하는 원인을 제공한다.
여기에 친청적인 모습을 보여주던 소현세자와 권력욕이 남다르던 세자빈 강씨를 불신하던 인조는 소현세자의 돌연사 이후 세자 책봉과정에서 11세의 원손을 배제하고 봉림대군을 세자로 책봉하려는 뜻을 강압적으로 신료들에게 종용하여 이를 관철시키고, 이후 봉림대군의 계승권에 대한 위협 요소를 제거한다는 명목으로 세자빈 강씨와 소현세자의 아들들을 죽여 없애고 만다. 봉림대군의 왕위 계승은 비록 순리에는 어긋날 지라도 능력 있는 아들에게 후사를 잇게 하는 전통이 종종 왕실에서 있어왔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후환을 막기 위해서라는 인조의 이러한 조치가 도리어 후일 예송논쟁(禮訟論爭)이란 비극을 잉태하는 시발점이 되며 인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효종의 발목을 잡는 역효과를 가져오고 만다. 이렇듯 인조의 독단에 의해 왕위에 오른 효종은 자연스레 자신의 왕권에 위협을 느끼게 되었고, 왕위계승의 정통성 보완과 강력한 왕권을 확립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북벌론을 공론․명분화하여 전면에 내세우게 되었던 것이다.
참고 자료
<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이덕일, 김영사, 2000. 9 >
< 한국사 이야기 13 - 당쟁과 정변의 소용돌이, 이이화, 한길사, 2001. 3 >
< 효종조 북벌론의 성립과정에 대한 연구, 심민식, 1987. 6 >
< 조선 효종조 북벌론 연구, 김세영, 도서출판 을지문덕, 1997. 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