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파운드의 슬픔
- 최초 등록일
- 2008.02.05
- 최종 저작일
- 20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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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파운드의 슬픔 이시다 이라. 정유리. 황매 2006.04.01
서평입니다
목차
1. 사랑은 각자의 뜻이다
2. 서른 살
본문내용
1. 사랑은 각자의 뜻이다
소설은 시작하는 연인을 보여준다.
슬로우 걸의 ‘게이지’는 원 나이트 스탠드를 사랑으로 대치하고 살다가 순수한 것이 장애가 되어 버린 한 여자를 만난다. 아무것도 모르고 처음 만난 남자친구를 찾아 다니는 ‘미사키’의 순수함에 반한다. 굽실거리는 ‘미사키’의 모친을 보면서 사랑도 쉬운 것이 아니구나. 실연 역시도 정상적인 삶의 한 패턴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극과 극이 통한다는 말을 넘어서서 사랑은 일종의 사고(accident)다. 깜박하는 순간에 걸린다. 우리네 인생은 그런 우연의 연속이다. 그 우연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포장된다.
만나지 못하는 것도 사랑이다. 고작해야 1파운드 밖에 안 되는 슬픔으로 기차를 멈추려 한다. 사랑이 왜 슬픔인가? 하는 반성을 해 봄직하다. 슬픔이 뒷받침되어야 제대로 된 사랑이라는 메시지일 것이다. 사랑하는 시간의 질은 다르다. 사랑의 1박 2일과 사랑 없는 28박 29일. 그 무게 중심은 언제나 전자다.
‘1파운드의 슬픔’에 나오는 ‘마호’와 ‘도요키’는 포르노물의 주인공 같다. 그 에로물에 세익스피어의 1파운드 가슴살이 들어가는 게 의외이긴 하지만 정욕 역시도 사랑의 일종이다. 표시되지 않은 친절은 친절이 아닌 것처럼 표시되지 않는 사랑 역시도 사랑이 아니다. ‘플라토닉’도 사랑이고 ‘에로스’도 사랑이다. 몸이 가고 마음이 따라 가는 것도 사랑이고 마음이 먼저 가고 몸이 따라 가는 것도 사랑이다. 잠자리에 들고 나서야 사랑을 시작하는 친구들도 꽤 있다. 포르노 같은 정욕도 사랑이다. 정욕과 슬픔에 배설과 비극을 대비하는 것은 어떨까? 카타르시스란 비극을 보고 감정을 배설한 뒤의 상쾌함을 말한다. 찌꺼기를 버리는 상쾌함. 이 역시도 사랑의 일종이다.
사랑은 마주보기가 아니라 같이 보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 명제의 증거가 ‘두 사람의 이름’이다. 그들은 이니셜로 집안 물건을 분류하고 동거한다. 확신을 가질 때까지 서로에게 마음을 주지 않겠다는 무언의 다짐이다.
참고 자료
1파운드의 슬픔
이시다 이라. 정유리. 황매 2006.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