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계몽되어야 하는가?
- 최초 등록일
- 2008.01.25
- 최종 저작일
-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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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칸트의 계몽이란 주제에 대해 `진화`라는 개념을 덧붙여 나름의 견해를 정립한 글 입니다.
올랜드 블롬의 `집단 정신의 진화`의 견해를 참고하였으며
독특한 주제(계몽과 진화라는) 선정과 참신한 개념 정립으로 인해 A+을 받았습니다.
목차
1.서언
2.본론
1)계몽에 대한 정의
2)우리는 왜 계몽되어야 하는가?
3.결언
본문내용
18세기 ‘계몽’이란 개념이 哲人들에 의해 시대의 화두로 떠오른 이래로 인류는 명시적인 ‘계몽의 시대’를 지나왔다. 그렇다. 세계사적 연표로 볼 때 인간의 계몽은 이미 기백년 전에 이루어졌으며 우리는 현재 ‘계몽 이후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허나, 앨빈 토플러를 비롯한 미래학자들이 예언했던 정보화 시대를 10수년 전에 이미 돌입했음에도 “인류의 정보화가 완성되었다.”라고 선언하는 것이 여전히 적절치 못한 것처럼 계몽에 관한 연표 역시 史家들에게나 의미가 있는 ‘숫자’일 뿐 실질적인 인류의 계몽 여부와는 거리가 있는 것일 터이다. 다만 한 가지 확실 한 것은 저 위대한 선배인 칸트의 주창에 따라 들불처럼 번진 계몽에 대한 열의는 그의 사후에도 인류가 나아가야 할 길로서 존재해 왔으며 때때로 국가적 차원에서 일종의 캠페인(과연 이들이 주창한 ‘계몽’이 칸트의 그것과 일치 할련지는 상당히 의심스러우나 일단 이에 대한 논의는 차제하도록 한다.)을 벌이면서 까지 ‘계몽’을 목표로 세계는 질주해왔다. 허나 이러한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적 논의는 쉬이 배제되곤 한다.
애초에 우리가, 인간이 계몽에 이렇게 집착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인가? 우리는 정말 계몽 되어야만 하는가?
생각해보자. 오늘날의 세계에도 봉건적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전 근대적 국가나 부족은 얼마든지 존재하고 있다. 이들이 살고 있는 사회 시스템 그리고, 그들이 각 개인별로 지니고 있는 지적 수준은 분명 몇 세기나 전의 것으로 칸트가 계몽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기 전부터 존재했던 오랜 구습을 답보한 삶을 살고 있다.
참고 자료
올랜드 블롬 <집단 정신의 진화>, 푸코 <계몽이란 무엇인가?>, 칸트<실천이성비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