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압지를 다녀와서
- 최초 등록일
- 2008.01.13
- 최종 저작일
- 20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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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안압지를 다녀온 기행문, 사진 첨부 자료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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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교수님께서 답사를 다녀온 후 감상문을 쓰라고 하셨을때,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이 안압지였다.
신라 천년의 역사를 품은 만큼 곳곳에 유적지가 많았지만 데이트 코스로 몇차례 가보았는데 단순히 노는 기분으로 둘러본 곳이라 이번에는 좀더 자세히 둘러보고 무엇인가 하나 얻어서 오자는 생각에 안압지를 택하게 되었다. 안압지 가는 길 가에는 제주도 유채꽃 못지 않은 정말 많은 유채꽃들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늦은 시간 임에도 불고 하고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면서 즐기고 있었다. 깜깜한 밤에는 한번도 가보지 못 했던 안압지..유난히 빛나고있는 달과 별의 조명을 등에 업고 장엄하고 웅장한 건물의 조명과 조화되어 연못에 반사되어 비치는 것은 마치 한폭의 그림을 보는 듯 하였다.
먼저 안압지에 대해 알아보자면 삼국사기 674년 조를 보면 궁성 안에 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기르고 진금이수를 양육하였다고 하였는데, 안압지는 바로 그때 판 못이며 임해전에 딸린 것으로 추정된다. 1974년 이래의 준설공사와 고고학적 조사에 의하여 주목할 만한 유구와 유물이 발견되었다. 동서 200m, 남북 180m의 구형(鉤形)으로 조성되었는데, 크고 작은 3개의 섬이 배치되었다.
연못 기슭과 섬에 실시된 호안공사는 정교하고 도수로와 배수로의 시설도 또한 교묘하다. 연못 바닥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 와전류로서는 신라 특유의 우미한 무늬가 있는 것이 많은데, ‘儀鳳四年(679)’ 또는 ‘調露二年(680)’의 당나라 연호명이 있는 와전은 중요한 자료이다. 불교 예술품으로서 판상의 금동여래삼존상과 금동보살상 등의 우수한 작품이 있고, 유존하는 예가 드문 목조의 배, 건축 부재, 목간 등의 채취와 그 보존에 성공한 일은 귀중한 공적이다.
통일시기 영토를 넓히는 과정에 많은 부를 축적한 왕권은 극히 호화롭고 사치한 생활을 누리면서 크고 화려한 궁전을 갖추는 데 각별한 관심을 두었다고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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