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의 유리창 비평문
- 최초 등록일
- 2008.01.10
- 최종 저작일
- 2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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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정지용의 유리창1 비평문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정지용의 ‘유리창’은 일제 식민지 상황에서 조국의 상실로 인한 한과 슬픔이 개인적 정서를 통해 표출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지만 나는 그가 사랑하는 자식을 잃고 쓴 시라는 것에 초점을 두고 싶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 죽은 자식을 그리워하고 있는 그 애절함과 참다가 결국 울음을 터뜨리는 한 아버지의 마음이 나에게 전해졌기 때문이다.
자식을 잃은 슬픔을 간직한 화자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그 바라봄은 창밖의 사물들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유리창에 붙은 성에를 보기 위해서이다. 시간은 밤이라 멀리는 바라볼 수 없지만 유리창에 엉키는 성에를 ‘차고 슬픈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차고 슬픈 것’을 성에라고 유추한 것은 내 개인적인 견해이다. 원래 성에는 방안 공기와 밖의 공기가 차이가 나서 생기는 자연 현상인데 이 성에가 슬픈 것으로 인식되는 것은 화자가 간직하고 있는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슬픔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슬픔이 8행까지 차가울 정도로 억제되고 있는 것 같다. 창밖의 성에를 지우기 위해 입김으로 흐리게 하니 그 입김의 따뜻함 때문에 성에의 모습이 조금 변하게 되는데, 이러한 현상을 날갯짓하지 못하는 새가 갓 길든 것처럼 파닥거린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 날갯짓은 마지막 행에 등장하는 ‘산ㅅ새처럼’의 비유와 연결된다. 창밖의 성에를 제거하기 위해서 입김을 불지만, 그 입김 때문에 성에의 변화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입김을 다시 불고 지우고 하는 무의미한 동작만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이 동작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암시한 시어는 ‘열없이’인 것 같다.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을 계속 하자니 좀 멋쩍은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이런 행동은 상당히 오랜 시간 반복하고 있음을 4행과 5행에서 알 수 있다.
그러다 화자는 창밖의 별을 발견하게 된다.
참고 자료
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