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의 문제와 그 해결방안
- 최초 등록일
- 2008.01.10
- 최종 저작일
- 2006.08
- 7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소개글
이산가족문제와 해결방안에 대하여 제시하였습니다.
목차
서론
본론
1) 휴전 후 ~1 9 6 0년대
- 국제사회를 통한 노력 -
2) 1 9 7 0 년대
3) 1 9 8 0 년대 ~ 1 9 9 0 년대
4) 2 0 0 0 년대
-이산가족 상봉행사와 교류의 제도화-
결론
5) 최근 현황 < 당국차원 교류 추이 >
6) 향후 추진방향
-참고자료-
본문내용
남북한간의 인위적 단절과 계속된 적대적 대치상태는 이들로 하여금 가족들 간의 서신왕래나 상봉은 물론 생사조차 알길 없는 철저한 아픔을 겪게 하고 있다.
북한의 월남자 가족과 남한출신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정책과 강제이주정책으로 북한거주가족에 대한 거주확인이나 소재파악이 야기할 위험성 때문에 많은 이산가족들이 소식알기를 주저하고 있다. 남한에서도 지금은 철폐되었지만 연좌제로 인해 이산가족임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심리상태가 은연중에 남아있다. 따라서 남북이산가족 실패를 정확히 파악하기가 힘든 상황에 처해있다. 또한 분단 상태가 반세기 넘게 경과함에 따라 혈육상봉의 비원을 풀지 못한 채 유명을 달리하는 이산1세들이 증가하고 있어 남북으로 흩어진 가족, 친척들의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는 것이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남북이산가족의 숫자는 가족의 개념과 범위 및 실향민수의 산정법에 따라 달라지는데 친척개념으로 볼 때는 실향민과 이산가족 숫자를 동일하게 보아도 무리가 없다. 통상 남북을 합쳐 실향민 및 납북자 등과 그 가족친척을 포함할 때 1천만명이라고 하고 있는데 북한의 경우 월남자 가족과 남한 출신가족이 전체인구의 반수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래에서 이산가족의 실태와 정책적 모습을 시대별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1) 휴전 후 ~1 9 6 0년대
1951년 12월 제 60차 휴전협상에서 유엔군 측은 한국인 피납자의 주소를 알려줄 것과 그들을 송환할 것을 북한 측에 요구하였으며, 양측은 처음으로 포로의 명단과 자료를 교환하였다. 당시 유엔군 측은 11만 1천여 명의 인민군포로(이중 남한출신은 1만6천여 명)명단을 북측에 통보하였으나, 북한은 당시 8만8천여 명으로 추정되던 국군포로 숫자보다 훨씬 적은 7천1백여 명만을 통보해 왔다.
1952년 1월2일 유엔군 측은 전쟁포로 문제와 관련하여 송환을 원하는 포로는 양측이 1대1로 교환하자는 내용을 포함한 6개항의 구체적 제안을 하였다. 이에 대해 북한 측은 양측이 모든 포로를 일괄하여 강제송환 할 것을 주장하였다. 1월8일 유엔군 측은 1대1 원칙을 양보하여 전체 대 전체로 교환하되 동수로 교환하고, 나머지는 6.25당시 남한에 거주했다가 북으로 강제 납치된 실향사민인 일반민간인 억류자를 동수로 교환하자고 수정제의하였다. 북한 측은 이를 거부하고 1월28일에 포로교환 9개 항목을 제안하면서 포로교환은 원칙적으로 강제송환을 해야 하며 실향민 송환을 위해서는 장차 협조기구를 만들어 토의할 것을 제의했다. 결국 절충안으로 송환을 거부하는 포로에 대해서는 중립국위원회가 직권으로 처리하도록 한다는 안에 합의하고 실향민 송환에 관한 내용을 휴전협정 제3조 59항 규정에 삽입하였다.
참고 자료
- 이산가족찾기 60년 / 대한 적십자사 / 2005
- 남북이산가족 교류의 획기적인 진전을 위한 정책제언 / 최성 / 2005
- 통일부 홈페이지 http://www.unikore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