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황의 교육사상
- 최초 등록일
- 2008.01.06
- 최종 저작일
- 20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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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교육철학에서 이황의 교육사상입니다
목차
1.이황의 생애
2.이황의 교육사상및 교육방법
3.현대교육에서의 시사점
4.결론
본문내용
퇴계 이황은 경북 예안에서 출생하여 7개월 만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숙부에게서 양육되었다. 이황의 모친은 늘 자식들에게 문예만 힘쓰지 말고 몸가짐과 행실을 더욱 바르게 할 것을 가르친 것으로 보아 이황의 인격 형성에 모친의 영향이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 후 그는 성균관에서 문과에 급제하여 한때 관직에 몸을 담았으나 고향에서 학문에 정진하였다. 그가 관직에서 물러날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 외척들이 권력을 독점하는 어지러운 정치적 상황임을 볼 때, 아마도 그는 벼슬에 나가 시대를 바로 잡는 일 보다는 학문 연구와 교육을 통해서 인간의 올바른 삶의 도리를 밝혀 후세를 위해 참다운 표준을 제시하는 것을 더 중요시 여겨 벼슬보다는 학문에 정진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여기서 자기완성이 있은 후에야 바른 사회 완성을 이룰 수 있다는 그의 교육사상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일찍이 그는 주자전서를 읽고 여기 몰두하여 성리학을 연구, 마침내 대성하여 이로 인해 사방에서 학도들이 모여들어 학문을 배웠다. 1555년에는 스스로 도산서원을 설립하여 후진양성과 학문연구에 힘썼고 현실생활과 학문의 세계를 구분하여 끝까지 학자의 태도로 일관했다. 그는 아무리 제자가 많아도 조금도 싫어하지 않고 모두 받아들였다. 무엇보다 그는 제자 대하기를 마치 벗을 대하는 것처럼 하였다. 비록 어린 제자라도 함부로 이름을 부른다거나 `너`라고하고 하지 않았고, 보내고 맞을 때에는 항상 공손히 하였다. 특히 이황의 후손들에 대한 교육열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인맥은 성공의 가장 큰 밑천이다. 그러나 폭넓은 인맥을 쌓으려면 자기만을 내세워서는 안 되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인성(人性)과 지혜를 겸비할 때 가능하다. 이황 역시 이를 인식하고 ‘인맥
참고 자료
이원호, 교육사상사, 문음사, 307쪽 참조.
노상우, 교육의 역사와 사상, 교육과학사 284~285쪽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