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엽] 후한서
- 최초 등록일
- 2008.01.03
- 최종 저작일
-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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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범엽은『후한서』를 저술하면서 후한 당대의 풍기와 당시 특유의 역사현상을 반영하고자 주의를 기울였다. 예컨대 환관의 득세와 당고사건은 후한시대 최대의 사건이었던 만큼 여기에 연루된 인물도 극히 많다.
목차
후한서(後漢書) 1
범엽(范曄) 1
당시의 시대상(時代相) 2
『후한서(後漢書)』의 성립(成立) 3
『후한서(後漢書)』의 동기(動機) 3
『후한서(後漢書)』의 구성(構成) 4
주석서(注釋書) 23
『후한서』의 사학적 의의 26
참고문헌 28
본문내용
후한서(後漢書)
ㅊ 저술한 책으로, 후한의 13대(代) 196년간의 사실(史實)을 기록하였다. 기(紀) 10권, 지(志) 10권, 열전(列傳) 80권으로 되어 있는데, 이 중에서 지(志) 10권은 진(晉)의 사마표(司馬彪)가 저술한 것이다. 후한의 역사서로는 범엽 이전에 이미 『동관한기(東觀漢紀)』를 비롯하여 사승(謝承) 설형(薛瑩) 화교(華嶠) 사침(謝沈) 애산송(哀山松) 장번(張璠) 사마표(司馬彪) 등의 『후한서』가 있었는데, 범엽은 이 저술들을 바탕으로 하여 독자적 견해로 이 책을 쓴 것이다. 또한, 범엽 이전의 저술들은 모두 일실되고 없는 형편이어서 이 책이 후한서의 정사(正史)로 되어 있다.
범엽(范曄)
『후한서』는 범엽(范曄, 398~445년)이 쓴 것이다. 범엽의 자는 울종(蔚宗)이며 순양(順陽, 지금의 하남성 석천현(淅川縣) 사람이고, 남조 송나라 때의 저명한 학자이며 문학가이다. 어릴 적부터 학문을 좋아했고 경사(經史)를 두루 섭렵하여 문장이 수려했으며, 예서(隸書)에도 능하였고 음율 방면에도 탁월하였다. 동진 안제(東晋 安帝) 융안(隆安) 2년에 출생한 그는 19살에 주자사(州刺史)가 자신의 주부(主簿)로 임용하고자 했으나 응하지 않았고, 이후 유유(劉裕)의 아들 유의강(劉義康)의 관군참군(冠軍參軍)이 되었다. 유송이 동진을 대신해서 성립한 다음 범엽은 몇 차례 승진한 끝에 상서이부랑(尙書吏部郞)이 되었다. 이후 범엽은 또 몇 차례 승진하여 좌위장군(左衛將軍), 태자첨사(太子詹事)에 올라 일부의 금위군을 관장하면서 조정의 요직에 참여하기도 했다. 원가 22년 서담지(徐湛之)라는 자에 의해 범엽이 공희선(孔熙先), 사종(謝綜) 등과 유의강을 옹립하려고 밀모를 한다고 고발당해 송 문제에 의해 처형당했다. 그의 나이 48세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