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지역 보도연맹 양민학살 사건
- 최초 등록일
- 2007.12.22
- 최종 저작일
-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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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울산지역에서 발생한 보도연맹 양민학살사건 개요입니다.
울주군 청량면 오복재와 대운산 꼴짜기에서 발생한 양민학살 사건의 개요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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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울산시 울주군 청량면 율리 오복재 고개와 울주군 온양면 대운산 골짜기에서 일어난 보도연맹 양민학살사건은 1950년 7월~9월 백골부대, 경찰, 청년방위대 등이 울산지역의 보도연맹원 700여 명(60년 피해자 명단 작성 때 580명, 유족 등 700명 주장, 60년 6월 13일자 국제신보 870명 보도)을 율리 오복재 고개와 대운산 산꼴짜기로 끌고가 무참하게 학살한 사건이다.
1950년 울산에서는 전쟁 직전 이승만 정권이 만든 청년방위대가 학살에 동원되었다.
울산지역의 청량면과 온양 서생 등에서 가입된 보도연맹원들은 끌려와 심야에 학살당했다.
50년 7월 초 대운산에 미군 GMC 트럭으로 보도연맹원들을 끌고 와 사살했다. 트럭 서너 대, 많을 때는 5대씩 한꺼번에 나타나 대운산 아래 길가에 차를 대고 산속으로 끌고 갔다. 총살 전에 구덩이가 파져 있었는데 10여 평이 될 만큼 아주 컸다. 학살은 일주일동안 계속됐다. 현지 주민들이 현장 경비에 동원되기고 했다.
오복재 에서도 상당수 인원 학살됐다.
60년 부산지검 조사 때 청량면 율반, 정곡, 온양면 대설리 산골짝, 웅촌면 대복리 산골짝 등이 구체적인 학살지점으로 거론됐다.
1950년 7월 중순부터 울산에 주둔하고 있던 백골부대와 경찰 등은 청년방위대원을 동원해 읍·면별로 책정된 인원을 경찰서로 모이게 하였다. 가혹한 고문이 따른 조사과정을 거쳐 울주군 웅촌면 대복리 오복고개와 온양면 대운산골짜기 등에서 7~8차례에 걸친 집단총살이 있었다. 울주군 전체 869명의 보도연맹원이 학살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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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1960년 국회 증언청취속기록-울산편,
부산일보 1960년 9월 28일
울산매일 2006년 11월 22일
전민특위 울산진상보사위 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