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마르크 체제의 형성 및 붕괴
- 최초 등록일
- 2007.12.20
- 최종 저작일
- 20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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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비스마르크 체제의 형성 및 붕괴에 관한 리포트 입니다.
목차
I. 서론
II. 비스마르크 체제의 형성
1. 3제 동맹
2. 발칸위기와 베를린 회의
3. 베를린 회의
III. 비스마르크의 신 동맹체제
1. 독일-오스트리아동맹
2. 3국 동맹
3. 삼국동맹의 갱신과 재보장조약
IV. 비스마르크체제의 붕괴
V. 결론
본문내용
I. 서론
비스마르크는 현실주의적 정치가로 불려졌고, 근대적이고 부도덕적 현실정치의 주창자로 알리어졌다. 1871년 유럽에 독일 제국이 건설 된 후 그의 외교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독일 제국의 안전, 현상유지 그리고 프랑스의 고립이었다. 이를 위해 안전보장정책과 유럽평화를 위한 세력균형의 원리 위에서 이룩한 다각적 동맹체제를 비스마르크 체제라고 하였다. 즉, 독일의 안전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보장정책과 유럽평화를 위한 세력균형의 원리 위에서 이룩한 다각적 동맹체제를 비스마르크체제라 한다. 그럼 구체적으로 비스마르크 체제의 형성 및 붕괴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II. 비스마르크 체제의 형성
1. 3제 동맹
1873년과 1881년 두 번에 걸쳐 삼제동맹이 결성되었다. 독일의 호헨쫄레른 왕조,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조, 러시아의 로마노프 왕조의 3왕조를 결합시킨 삼제동맹의 정신은 프랑스의 공화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메테르니히적인 보수․평화의 동유럽 군주국가의 결속이었다. 3국간의 이해관계의 일치점은 유럽의 현상유지에 있었다. 독일은 프랑스를 고립시켜 복수전쟁의 가능성을 약화시키기 위하여 러시아와의 협력이 필요하였다. 당시 비스마르크의 유럽 상황에 대한 인식은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는 현상유지 국가에 속하였고, 프랑스와 이탈리아 발칸국가들은 현상타파 국가에 속하여 있기 때문에 통일된 독일 제국의 안전은 현상유지국가와의 단합이 그 전제가 되었다. 그 뿐 아니라 독일은 프랑스의 고립이 비스마르크 외교의 제1목적이었기 때문에 프랑스의 동맹관계를 방해하고 프랑스가 동맹국을 얻을 때 독일은 프랑스에 대항하는 국가를 러시아로 하였다. 오스트리아와의 동맹은 합스부르크의 지도적 위치를 보고 체결한 것이다. 당시 유럽의 세력균형은 오. 헝가리제국의 존재에 걸려있었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는 프랑스의 패배로 독일에 복수가 불가능해졌고, 러시아와의 화해가 독일을 통해 가능하다고 보았다. 3제 협상은 1887년 발칸의 위기를 거치면서 붕괴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