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성 팜플렛
- 최초 등록일
- 2007.12.19
- 최종 저작일
-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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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직접 제작한 공산성 팜플렛
양면인쇄하여 접을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목차
<공산성?!>
1. 동문루
2. 광복루
3. 임류각
4. 명국삼장비
5. 장대지
6. 강당지
7. 쌍수교
8. 진남루
9. 쌍수정 사적비
10. 쌍수정
11. 추정왕궁지
12. 금서루
13. 공북루
14. 영은사
15. 연지
본문내용
공산성?!
백제 문주왕 원년(475)에 서울 한산에서 웅진으로 천도한 후 성왕(聖王) 16년(538) 부여로 수도를 옮길 때까지 5대 64년간 웅진시대의 방어거점
웅진성: 백제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까지 공주가 웅 진으로 불릴 때의 이름
쌍수산성: 고려 초기 전국적으로 난을 피하여 인조 (仁祖)가 공주에 파천한 이후로 왕에게 쌍수의 이 름을 받아 쌍수산성이라 불림
원래 토성이었으나 조선시대에 석성으로 고침
금강에 접하고 길이 약800m의 장축을 북서-남동으로 두고 금강의 남안에 자리하고 있는 표고 85m와 110m 두개의 산봉우리와 금강의 단애를 이용하여 만든 표곡식 산성, 석축부분은 1,930m, 토축 부분은 730m, 동남부 에서는 이중으로 되어 있음
남아있는 성벽의 높이 6m, 너비 3m
군사적 목적을 가진 산성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지 만 무녕왕(武寧王)의 지석에서 나오는 방위나 기타 자 료를 들어 웅진시대의 왕궁터로 보는 견해도 있음
동문루
- 공산성의 네 개의 성문 가운데 동쪽에 있는 문
광복루
- 공산성(사적 12)의 동쪽 최고봉에 있는 누각
임류각
- 임류각은 백제가 공주로 왕도를 천도한 후, 약 25년이 지난 24대 동성왕(東城王) 22년에 (500) 왕궁의 동쪽에 건축한 고층 건물로서, 신하들의 연회 장소로 사용
명국삼장비
. - 1598년(조선 선조 31)에 명나라 장수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송덕비
장대지
- 이곳은 조선시대 장대(성안에서 군대를 지휘하기 위하여 만든 건물)가 있었던 터
강당지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