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전기의 사회구조
- 최초 등록일
- 2007.12.18
- 최종 저작일
- 20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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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사회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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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고려전기의 사회구조는 본관제를 기반으로 짜여져 있는데, 官 - 吏 - 民 중심이라는 사회구조를 형성하였다. 본관제로서 전정에 인정을 묶어 역을 재생산 하였다. 民은 군현제 지역에 거주하는 백정과 부곡제 지역에 거주하는 잡척이 이에 해당한다. 천인의 경우는 본관이 없으며 사회구조의 틀에서 끼지 못하고, 소유의 대상이었다. 吏층은 무산계를 주었고, 서리와 향리가 이에 속한다. 서리 중에서, 인리와 장고가 입사직과 미입사직의 경계를 설정하였다. 향리는 읍사를 구성하여 행정 실무를 책임․운영하였다. 이들은 백정이하의 양인을 지배하였으며 본관제를 운영․관리하였다. 이들은 전정의 소유와 거주, 즉 영역의 규제가 존재하였다. 官층(경관)은 재추 참상 참하로 나뉘었다. 재추는 정치․행정․입법․군사의 책임을 지고 총괄하였다. 또한 식목도감과 도병마사를 구성하면서 문벌의 연합을 형성하였다. 참상은 행정실무의 책임자로서 6부를 담당하였고, 군현의 외관으로서 향리를 지휘 감독하였다. 참하는 행정 보조 역할을 하였고, 문서의 기록․관리․교육실무 등을 담당하였고, 수력의 속관이나 하급지휘관의 역할을 하였다. 사회구조의 전체적인 틀은 이러하다.
이런 틀은 고대와는 달리 경쟁원리를 반영한 신분제로 운영되었다. 교육과 과거를 통해 관직을 얻고 인사고과에 반영된다. 고대사회의 진골이 특권을 독점하는 구조에서, 왕과 사족이 분리되고 이족의 상층을 포함한 사족(관인층)이 능력을 바탕으로 경쟁하여 관직을 얻거나 다시 능력을 평가받아서 승진 또는 탈락하는 구조로 변화한 것이다. 성취 가능한 관직이 신분의 지표가 됨으로써 신분제 또한 경쟁을 통해 성취하는 신분제로 바뀌었다.
고려는 중앙과 지방의 소통이 가능한 사회구조였다. 고대에는 중앙귀족이 군사적 점령을 바탕으로 일방적으로 지배하여 중앙과 지방의 소통이 단절된 사회구조였다. 반면 고려에서는 지방세력이 국가의 승인을 받아 읍사를 구성하고, 향리가 되어 지역단위에서 민을 자율적으로 지배 통치하도록 하며, 국가에서 외관을 파견하여 향리가 민을 지배하는 것을 지휘 감독하는 구조로 바뀌었다. 지방에 양계를 제외한 경기 이남 지역은 민정 위주의 편제였다. 향리는 향교와 계수관시를 거쳐서 중앙의 과거를 봄으로써 관직에 진출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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