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정의 개혁정치
- 최초 등록일
- 2007.12.12
- 최종 저작일
- 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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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명대 장거정의 개혁정치에 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서론
2. 장거정의 개혁정치
1) 형성배경
2) 개혁내용
① 논시정소(논시정소)와 진육사소(진육사소)
② 행정개혁: 고성법(고성법)과 이치개혁(이치개혁)
3. 장거정의 재정정책(재정정책)
1) 명 중기의 재정위기
① 토지겸병(토지겸병)에 의한 세원감소(세원감소)
② 통치 집단의 소비팽창(소비팽창)
③ 과다한 군사비 지출
2) 재정수지(재정수지) 개선책
① 긴축정책(긴축정책) 실시
② 원액회복정책(원액회복정책)
4. 개혁의 성격 및 한계
1) 개혁의 성격
2) 동림파(동림파)의 장거정에 대한 평가
5. 결론
6.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서론 李敏鎬 /「張居正(1525~1582)의 財政政策 硏究」/ 1994 / 경희대학교 대학원 / pp.1~4
명이 세워졌을 당시 경제력은 매우 약화되었다. 그 이유는 원 대를 거치면서 농촌의 생산력이 황폐해졌고, 그에 따른 유통경제의 쇠퇴, 상업의 쇠퇴로 인한 것이었다. 이는 세액징수에 차질을 가져와 국가재정 약화를 일으킬 수 있는 요인이 되었다. 따라서 명에 있어서 시급한 과제는 안으로는 토지제도의 변화와 향촌지배체제와 재정정책의 확립이었다. 또한 밖으로는 여전히 강성한 몽골족 등의 북방민족의 침략을 막는 것이 시급한 과제였다.
명은 이를 위해 토지제도로 관전(官田)제도, 향촌지배체제로 이갑(里甲)제도, 재정정책으로 초(鈔)통화정책을 시행하였다. 또한 군사비 지출을 막기 위해 둔전제(屯田制)를 시행하였다. 둔전제의 시행은 군이 자급자족을 하게 함으로써 군사비 지출을 막아 재정에 안정을 이루었다. 이러한 제도가 정착되면서 사회가 안정되어 명초는 경제력이 성장하였고, 재정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다.
하지만 명 중기에 들어가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향촌지배체제인 이갑제의 붕괴와 대토지소유가 일반화되면서 조세를 낼 중소지주층이 사라져 세액징수에 커다란 차질이 생기게 되었다. 또한 황실재정의 확대와 거대한 관료조직, 둔전제의 붕괴에 따른 군사비 지출은 명의 재정지출을 급격히 늘리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이에 따라 명 중기부터는 재정이 적자로 돌아섰고 이후 만성적인 적자가 되었다. 이를 인식하고 타개한 사람이 장거정이었다. 장거정은 재정정책을 통해 명의 재정을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시켜 잠시나마 명 말에 안정된 재정을 이루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장거정이 행한 일련의 개혁내용들을 살펴보고, 그 중에서도 장거정이 가장 역점을 둔 개혁 방향이었던 재정정책을 중심으로 명대 사회경제사의 한 단면을 보고자 한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서 명 중기의 재정위기 상황을 좀 더 명확히 파악할 수 있고, 장거정이 행한 여러 정책들을 검토함으로써 명대 정책사에서의 장거정의 위치를 알아보고, 또 그가 행한 정책들이 명 말의 정치 ․ 경제 ․ 사회 전반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등을 추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