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평책] 영조와 정조의 탕평정치(탕평책)A+
- 최초 등록일
- 2007.12.06
- 최종 저작일
- 20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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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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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영조의 탕평정치
2. 정조의 탕평정치
- 참 고 문 헌 -
본문내용
2. 정조의 탕평정치
숙종조 박세채에 의해 황극탕평론이 주창된 이래 탕평은 정치적인 폐단과 모순을 제거하는 유일한 방안으로 인식되었다. 영조는 당쟁의 피해를 몸소 체험한 군주였기에 그 폐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만큼 그는 당쟁 타파에 주력하는 가운데 탕평을 자신의 치세를 일관하는 정국 운영의 원리로 제시했다. 그 결과 영조는 당파간의 극단적인 대립을 억제하고 왕권을 강화하는 데 일정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영조의 탕평은 외척 세력을 강화하는 역기능을 수반하여 새로운 부작용을 낳았다.
더욱이 영조는 의리문제를 당쟁 격화의 요인으로 여겨 그에 대한 논의 자체를 차단하려 했다. 신임의리와 임오의리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영조의 이러한 입장을 완론 세력은 공감했지만, 준론 세력은 용인하지 않았다. 이에 영조가 소론 ․ 노론의 완론을 통해 탕평을 시도하여, 노론의 준론과 남인의 청류는 정국에서 배제되었다.
이 시기 탕평의 주체인 완론은 기본적으로 왕실 ․ 외척과 연합한 특권 세력이었다. 이들은 외척과 결합하여 탕평당을 형성하는 한편, 왕실과의 통혼을 통해 새로운 외척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결국 영조의 탕평은 완론 탕평으로 외척의 성장을 촉진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조는 즉위와 동시에 영조의 탕평책을 계승할 것임을 분명하게 밝혔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탕평이란 원칙에 국한될 뿐, 그 방법까지 계승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정조는 영조의 탕평책에 대해 시비 ․ 의리가 분명하지 않고 군자 ․ 소인이 판별되지 않은 미봉책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이는 영조의 과실이기보다는 군주를 바르게 보필하지 못한 신료들의 책으로 돌렸다.
참고 자료
- 김성윤 / 조선후기 탕평정치연구 / 지식 산업사 / 1997
- 신동준 / 조선의 왕과 신하, 부국강병을 논하다 / 살림 / 2007
- 이성무 / 조선시대 당쟁사 2(탕평과 세도정치 : 숙종조~고종조) / 아름다운날 /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