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시인 이용악에 대한 전반적인 연구내용입니다.
생애와 세계관, 대표작품 감상까지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목차
1. 이용악의 생애
2. 이용악의 시 세계관
3. 이용악 작품 감상.
본문내용
1. 이용악의 생애
이용악은 1914년 11월 23일 함경북도 경성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줄곧 가난한 생활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극빈에도 불구하고 경성보통학교와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후 1934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日本)대학 예술과를 잠시 다녔으며 조치대학 신문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최하층민이 생계 수단으로 삼는 막노동을 하며 학비를 조달하고 생계를 이어갔다. 방학 기간에는 다시 고국으로 건너와 고향 등지와 국경 지방을 유랑하기도 했다. 이 기간 중 신인문학 1935년 3월호에 시「패배자의 소원」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1939년 귀국한 후 그는 한 때 최재서가 주관하던 인문평론의 편집기자로 근무하기도 했으나 이마저 폐간(1941.4)당한 이후 그가 작품 활동을 이어나갈 방법은 친일적 성향이 짙은 잡지에 가끔 작품을 발표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힘든 상황은 연이어 이어져 1940년 무렵에는 모종의 정치 사건에 연루되어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일제의 폭압적 식민 지배가 극에 달해 가던 때인 1942년 고향 경성으로 귀향했던 그는 해방이 되자마자 상경,`조선 문학가 동맹`의 맹원으로, 중앙신문의 기자로 바쁜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제3시집 『오랑캐꽃』(1947)과 제4시집 『이용악집』(1949)을 내는 등 왕성한 시작 활동을 수행한다. 1949년 모종의 정치 사건에 연루되어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갇히게 된다.
그러나 1950년 6월 28일 북한군의 서울 점령과 함께 출옥, 1951년 3월부터 1952년 7월까지 조선 문학가동맹시분과 위원장 일을 보면서 한국 전쟁기를 보낸다. 박태원, 현덕, 설정식 등과 6․25 전쟁 시기에 월북한 그는 1963년 8월 임화, 이승엽, 이원조 등 “남로당계” 숙청 당시 반년 이상 집필을 금지당하기도 했다. 다른 문인들에 비하면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은 것이다. 이후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 할당량을 정해놓은 마냥 일정량의 문학 작품을 생산해 내야 했던 다른 문인들과 다를 바 없이 일정한 형태의 문학 활동을 지속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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