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여성, 허난설헌의 삶과 규원가
- 최초 등록일
- 2007.12.02
- 최종 저작일
- 20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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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허난설헌의 작품 중 규원가에 대한 작품 분석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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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시대를 앞서 간 천재여류시인, 너무나 비범했던 자유롭고 방탕한 영혼, 세상의 모든 비난을 헤치고 나라 밖에서 더욱 빛나던 시인, 시를 사랑한 시인, 당대의 다른 여성들과는 달리 독보적인 자기 삶의 방식을 가졌던 여성, 오랜 한․중 문화 교류의 역사 속에서 한반도의 많은 문헌 속에 편집되고, 또 가장 많은 사람들의 붓과 입을 통해 그 이름이 오르내린 단 한 사람. 이 많은 수식어가 어울리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라 조선 16세기를 살아간 여성인 허난설헌이다.
먼저, 그녀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면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 본관은 양천(陽川). 본명은 초희(楚姬). 자는 경번(景樊), 호는 난설헌. 강릉출생. 엽(曄)의 딸이고, 봉(#봉20)의 동생이며 균(筠)의 누이이다.
가문은 현상(賢相) 공(珙)의 혈통을 이은 명문으로 누대의 문한가(文翰家)로 유명한 학자와 인물을 배출하였다.아버지가 첫 부인 청주한씨(淸州韓氏)에게서 성(筬)과 두 딸을 낳고 사별한 뒤, 강릉김씨(江陵金氏) 광철(光轍)의 딸을 재취하여 봉·초희·균 3남매를 두었다.
이러한 천재적 가문에서 성장하면서 어릴 때 오빠와 동생의 틈바구니에서 어깨너머로 글을 배웠으며, 아름다운 용모와 천품이 뛰어나 8세에 〈광한전백옥루상량문 廣寒殿白玉樓上梁文〉을 짓는 등 신동이라는 말을 들었다.
허씨가문과 친교가 있었던 이달(李達)에게 시를 배웠으며, 15세 무렵 안동김씨(安東金氏) 성립(誠立)과 혼인하였으나 원만한 부부가 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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