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 삼릉
- 최초 등록일
- 2007.11.28
- 최종 저작일
- 20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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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경주 남산 삼릉에 관한 리포트임
목차
序文
1. 8대 傳아달라왕릉(재위: A.D154~184)
2. 53대 傳신덕왕릉(912~917)
3.54대 傳경명왕릉(917~924)
4. 연대비정
5. 주인공 비정
본문내용
序文
남산삼릉은 배리삼릉으로 불리며 신덕왕릉이라 불리는 가운데 무덤은 1953년, 1963년에 도굴되어 1963년에 발굴 되었다. 3기모두 원형봉토분이며 서쪽 가장아래 8대 아달라왕릉(154~184), 중앙 53대 신덕왕릉(912~917), 동쪽 54대 경명왕릉(917~924)으로 전한다. 능의 구조는 도굴로 확인 된 傳신덕왕릉으로 인하여 모두 횡혈식석실분으로 추정된다. 무덤 주인공에 관해서는 아달라왕, 신덕왕, 경명왕이라고 불리지만 그 근거는 미약하다. 모두 박씨계 무덤으로 보고 추정한 것이지만 아달라왕과 신덕왕 사이에 700년이라는 공백이 있는 바 이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보고 있다. 신덕왕릉에서 유물이 거의 출토되지 않고 남은 2기의 발굴이 행해지지 않아 확정하기는 부족하지만 지금까지의 자료를 종합해 보건대 각 무덤의 주인공은 좀더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
1. 8대 傳아달라왕릉(재위: A.D154~184)
직경: 18m
높이:4.2m
逸聖王의 장자. 어머니는 박씨 支所禮王의 딸. 妃는 朴씨, 內禮부인이니 祗摩王의 딸이다.
아달라왕 4년에 감물, 마산의 이현을 두고 5년에 죽령을 열었다. 14년에 백제와 싸워 이기고 5년 20년에 왜와 내빙하였다.
아직 미발굴되어 신덕왕릉으로 보건대 횡혈식석실분으로 추정.
2. 53대 傳신덕왕릉(912~917)
직경: 18m
높이: 4.7m
성은 박씨고, 휘는 景暉로 아달라왕의 원손이다. 아버지는 乂兼은 정강대왕을 섬겨 대아찬이 되었고, 어머니는 정화부인이며, 비는 김시니 헌강대왕의 딸이다. 효공왕이 돌아가고 아들이 없으므로 나라사람에게 추대되어 즉위하였다. 5년에 견훤이 대야성을 치다가 이기지 못하였다.
참고 자료
강인구-古墳硏究 학연문화사
최병현-신라고분연구 일지사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경주시- <남산 경주> 정밀 학술조사보고서
이병도- 삼국사기(上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