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고전 작가 연구 - 서포 김만중의 생애와 사상
목차
서포 김만중 연보
Ⅰ. 서론
Ⅱ. 본론
1. 생애
2. 정치사회적 배경
3. 어머니를 위해 창작한 깊은 의도
4. 문학 사상
4.1 구비문학의 가치 인정 - 문학의 보편성
4.2 자주적 민족문학
4.3 감동의 효과 - 문학의 효용론
4.4 유(儒)불(佛)선(仙)의 사상
Ⅲ.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17세기는 엄격한 정주학 또는 주자학의 사상체계가 수립되고, 이에 대한 반론을 억압하던 시기였다. 또한 주자학의 사상체계가 무너지던 시기였다. 이때 김만중은 당시 문화적인 모든 현상이 중국문화권에 꽁꽁 묶여있다는 사실을 비판하고, 한국인은 한국어로 작품을 써야 한다는 국민문학론을 제창하였다. 뿐만 아니라, 시문에 있어서나 소설에 있어서도 이것에 대한 일가견을 갖고 폭넓은 범동양적인 지식의 경험을 통하여 문학 창작에 임한 위대한 작가이다.
그는 17세기 후반의 격동기를 살면서 사상가 및 문학가로서 뚜렷한 자취를 남겨 주었다. 문학이론과 창작의 실천에 있어서 진보적이라 할 수 있는 업적을 남겼다. 특히 그가 여러 편에 걸쳐 국문으로써 소설을 창작하였다는 사실은, 소설 양식의 본질과 역사성에 비추어 볼 때, 그 표현매체로서 국문을 사용하였다는데 의의가 덧붙여진다. 또 그는 자신이 처한 사회와 인간의 문제에 대하여 부단한 관심을 가져 그 나름의 방법으로 신분적 제약을 넘어 관습화된 왕조사회의 타성적 현실에 이의를 제기하고 참여한다. 경직된 당대의 유가적 흐름과는 달리 비교적 유연성 있게 현실을 이해하고 발언할 수 있었던 것은 서포 나름의 의식과 문학사상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라 이해된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서포 김만중의 생애와 사적배경, 문학사상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Ⅱ. 본론
1. 생애
김만중(1637~1692)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소설가로 본관은 광산(光山), 아명은 선생(船生), 자는 중숙(重叔), 호는 서포(西浦), 시호(諡號)는 문효(文孝)이다. 조선조 예학의 대가인 김장생의 증손이요, 충렬공 익겸의 유복자이며, 광성부원군 만기의 아우로 숙종의 초비(初妃)인 인경왕후의 숙부이다.
아버지 김익겸은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몽진을 떠난 인조가 한 달 반의 항전 끝에 굴욕적인 항복을 하자 화약고에 불을 지르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그때 그의 부인은 서포를 임신하고 있던 중이었다. 윤씨 부인은 다섯 살 난 아들 만기와 함께 강화섬을 빠져나와 친정에서 몸을 풀었다. 김만중은 당시의 정치적 중추세력이었던 서인의 골수 노론 가문에서 유복자라는 기구한 운명으로 태어났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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