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김수근에 대하여
- 최초 등록일
- 2007.11.27
- 최종 저작일
- 20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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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건축가 김수근에 대하여 정리한 글
목차
■ 김수근의 소개
■ 김수근 건축의 세계
■ 김수근의 주요작품
본문내용
■ 김수근의 소개
그는 1931년 2월 20일 서울출생으로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과 2년 중퇴 후, 일본으로 건너가 1958년 동경 예술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1960년에 동경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를 받았다. 1961년 귀국하여 김수근 연구소를 열고 1972년까지 대표로 지냈다. 그 사이 1961~ 1968년 홍익대학 조교수로 재직했다.
1982년 미국 건축가협회 명예회원이 되었고 국민포장(1970), 미국 범태평양 건축상(1971), 이탈리아 문화 공로 훈장(1979), 철탑산업훈장(1984), 은탑산업훈장(1986) 등을 받았다.
대표적인 작품에는 [자유센터], 이란 테헤란의 [엑바탄 주거단지], 서울 잠실운동장 내 [올림픽 주경기장], [마산 양덕성당] 등이 있다.
미국「타임」紙선정- 한국의 가장 경탄할만한 훌륭한 건축가
미국의 「타임」紙에서 `한국의 가장 경탄할만한 훌륭한 건축가` 라고 평한 건축가 김수근은 이 땅에 현대건축의 기틀을 마련함과 동시에 건축도 예술임을 증명해 보였다. 그러나 그만큼 논쟁 의 중심에 서 있었던 건축가도 없다. 부여박물관의 왜색논쟁을 비롯해 유럽 건축의 모방이라는 논쟁까지, 그의 건축은 언제나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논쟁은 김수근 개인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당시 한국의 건축이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건축을 빛과 벽돌이 짓는 `시` 라 여겼던 김수근. 그가 이 회색의 도시에 창조하고자 했던 공간은 무엇이었나.
■ 김수근 건축의 세계
김수근은 김중업과 함께 한국 현대건축의 1세대로 평가된다. 물론 해방전에 박길룡과 박동진으로 대변되는 건축가들이 존재했으나, 와전한 근대건축가로 보기 힘들다. 해방 후에도, 일제 식민지 정책의 일환이 기술교육의 제한으로 야기된 기술자의 부족, 경제적 기반의 빈약에 따른 상공업의 부진, 민중의 정치의식의 과잉에 따른 사회적 혼란, 현대화에 대한 적응력 부족으로 새로운 건축창조행위가 일어났다고 보긴 힘들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맞은 한국전쟁은 국토의 분단이라는 비극에 함께 그나마 이식된 문화가 존재했던 도시를 폐허화시
참고 자료
각종 서적과 인터넷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