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적인 동양이 남성적인 서양을 만났을 때
- 최초 등록일
- 2007.11.26
- 최종 저작일
- 20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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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여성적인 동양이 남성적인 서양을 만났을 때를 읽고
젠더론에 기초한 식민지 역사를 한일 문제에 접근해서 쓴 글입니다.
목차
1.여성적인 동양이 남성적인 서양을 만났을 때
(1) 그들의 만남
(2) 인도의 여성성
(3) 남성다움의 추구
(4) 인도의 발견
2. 일본의 조선 침략
(1) 일본과 조선의 만남
(2) ‘젠더론’ 에 입각한 조선 지배
(3) 남성다움의 추구
(4) 자주적인 한국
본문내용
1. 여성적인 동양이 남성적인 서양을 만났을 때
남성다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강인함, 능동적, 합리적, 이성적, 활동적, 진취적 이란 단어가 떠오르고 여성다움 하면 떠오르는 것이 수동적, 조신함, 연약함, 감성적 등과 같은 단어 들이 떠오른다. 이러한 이분법적인 이미지는 남성이 홀로설 수 없는 여성을 지켜주고 지배해야 한다는 논리를 지지해주고 이는 국가간에 식민 지배를 정당화 시켜주는 역할을 해왔다. 이러한 논리는 남성적인 서양인 영국이 여성적인 동양의 인도의 식민지 지배를 합리화 시키는 수단으로 작용하였다.
(1) 그들의 만남
그들의 첫 만남은 영국의 일방적인 열세였다. 영국은 7년 동안 눈물겨운 외교 끝에 동인도 회사를 설립하고 그들의 상업적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정치적 상황까지 개입하게 된다. 동인도 회사는 작은 무역회사에서 벵골지방의 통치자로 바뀌고 제국의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그들은 처음 인도인과 닮은 점을 찾기 시작한다. 먼저 언어로 산스크리스어와 유럽어가 동일한 어족이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그리고 교육으로 인도인을 교화하기 위해 동양과 서양의 낯선 것과의 조화를 가르치는 대학이 세워진다. 하지만 19세기 초 영국의 통치가 점점 가시화 되자 영국인은 인도인과 다름을 주장한다. 영국은 인도 사회를 자신들의 눈으로 파악하게 된다. 그들의 우월함을 강조하고 나태한 인도인은 홀로 설 수없기 때문에 자신들의 통치를 정당화하기 시작한다.
(2) 인도의 여성성
인도의 닮은꼴에 대한 추구에 부담과 두려움을 느낀 영국은 인도와 차별을 두기 위해서 성의 개념을 가져왔다. 이는 여러 문학작품에서 나타난다.
식민지 지배자들은 자신의 남성다움을 돋보이려고 여성을 보호하지 못하는 나약한 인도 남성의 이미지를 부각하는 전략을 구사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