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현전의 설립과 그에 대한 기능과 역할
- 최초 등록일
- 2007.11.17
- 최종 저작일
- 2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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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집현전의 설립과 그에 대한 기능과 역할에 대해서 특히 세종대왕 집권시에
사회적인 역할을 살펴보고자 한다.
목차
집현전이란 과연 무엇인가?
그렇다면 집현전의 업적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그렇다면 집현전 안에는 누가 있었나?
집현전의 최후, 그리고 역사적의의
집현전 그 곳은 보수와 진보가 섞인 아이디어뱅크
본문내용
“어느 날 세종대왕은 밤늦게까지 집현전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 내관에게 알아보라고 하자 신숙주라는 학자가 책을 보고 있었다. 새벽닭이 울자 신숙주 학사가 잠자리에 들었다. 세종대왕은 내관에게 자신의 옷을 벗어주며 신 학사에게 덮어 주고 오라고 하였다. 잠에서 깨어난 신숙주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기 몸을 덮고 있는 게 이불이 아니라 바로 세종대왕께서 입고 다니시는 옷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로 학사들은 세종대왕의 극진한 대접에 몸 둘 바를 모르고 더 더욱 열심히 학문을 연구하고, 몰두하였다.”
이것은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에 대한 유명한 일화 중 하나이다. 지금도 그러기 힘들지만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경계가 엄격했던 조선시대, 그것도 한 나라의 임금과 그 밑에 신하라는 사이에서 잠들어 있는 신하에게 자신의 옷을 벗어주는 것이란 정말 생각하기 쉽지 않고 어느 시대의 왕에게도 이런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단지 세종대왕 자신의 어진 성품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위에 나온 것처럼 집현전에 모인 학자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여주는 증거라고도 할 수 있는 저 사건은, 세종대왕이 집현전에 대해 얼마만큼의 관심과 애정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왜 세종대왕은 집현전이란 곳을 만들었으며 그곳에 관심과 애정을 갖았는지 집현전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집현전이란 과연 무엇인가?
집현전(集賢殿),
모을 집, 어질 현, 큰 집. 즉 어짐을 모으는 큰 집이란 집현전은 조선 초기에 군중에 설치한 학문 연구 기관이다. 조선왕조 건국 이래 표방해 온 유교주의 국가로서 갖추어야 할 의례, 제도의 확립과 인재의 양성 및 문풍의 진작을 위해 세종 2(1420년)년에 궁궐 안에 설치하였다.
집현전은 학문 연구 기관으로서 제도적으로는 도서의 간직과 이용, 학문 활동, 국왕의 자문에 대비하는 일등을 맡아보았다. 집현전에서는 정치에 귀감이 되고 후세에 본이 될 각종 사서의 편찬과 주해 사업 등을 활발히 하였다.
참고 자료
출처 : 네이버 지식in
네이버 백과사전
www.hangul.or.kr
세종대왕 기념 사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