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투왕조와 정복왕조(북방유목민)
- 최초 등록일
- 2007.11.17
- 최종 저작일
- 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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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정복왕조설
이와는 달리 755년 안사의 난을 계기로 당조의 위세가 쇠미해지면서 북방민족이 다시 강성해졌다. 이들은 당과의 교류를 통해 한족의 문화를 간접적으로 접하면서 차츰 민족적인 자각이 높아지게 되고 나아가 중국문화에 대항하여 민족 독자의 전통을 지키고자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그리하여 10세기 초 거란족이 세운 요를 선두로 금 원 청의 이민족 왕조가 중국의 일부와 전체를 통치하게 되는데 이를 앞서의 침투왕조와 구분하여 정복왕조라고 정의한다.
목차
1. 침투왕조(잠입왕조)와 정복왕조
- 이민족의 위협
- 이민족의 중국사에서의 위치
- 침투왕조
- 정복왕조설
- 비트포겔의 정복왕조의 정의
2. 잠입왕조의 사례
- 북위
3. 정복왕조의 사례
- 요
- 서하
- 금
-원
- 청
4. 정복왕조와 침투왕조의 차이
▷ 통치체제상
▷ 사회신분구조
▷ 종족의 종교와 문화
5. 나오며
본문내용
- 이민족의 위협
중국은 끊임없이 북방의 이민족과 대치하며 그들을 제압하거나 견제하거나 혹은 타협하거나 정복되면서 관계를 맺어왔다. 이들중 豪悍한 이민족들은 부분적으로 혹은 전체적으로 중국을 지배하여 한인이 주축이 아닌 스스로가 주축이 되어 왕조를 수립하기도 했다.
이민족에 대한 투쟁이 얼마나 괴롭고 힘겨운 것이었는가는 중국의 만리장성이 말해주고 있다. 또는 수도가 항상 북쪽에 치우친 것을 들어 군사적 중심지로서 이민족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 이민족의 중국사에서의 위치
북방의 이민족들은 기원전 5세기부터 중국의 북쪽에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이후 진한대 흉노족에 이어 5호16국시대에는 화북지역을 석권하기도 했고 요. 금은 중국의 일부를 차지하며 중국과 거래?를 통해 자신들의 왕조를 유지했다. 그리고 마침내 몽고족과 만주족에 의해 중국 전지역이 지배당하게 된 것이다.
- 중국사회에 출현한 유목민족이 세운 왕조에 대한 중화주의적 관점
이들 유목민족이 세운 왕조들은 중국의 ‘변방민족왕조’라든가 또는 ‘이민족왕조’ 등 애매한 개념을 처리해왔다. 이것은 기존의 역사서술이 중국 중심으로 진행되면서 이민족은 변두리나 주변으로 밀려나왔던 결과이다. 즉 이들의 문화가 한문화에 비해 낮은 수준으로 중국을 정복한 이후에 한문화에 용해되고 말았다고 보는 것이다. "동화이론" 혹은 “흡수론”으로 요점되어지는 이들 논리는 정복자들은 정복이후에 한화되어 정착생활을 하고 동화되어 본래의 실질강건한 기풍이 점차 시들해지면서 다시 한인들에게 제어당하고 말았다고 말하고 있다.
- 이민족 왕조는 모두 똑같은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된다.(독일사학자 비트포겔)
그러나 이들 ‘이민족왕조’가 통시대적으로 똑같은 양상을 갖는가에 대해 독일의 사학자 비트포겔은 다른 견해를 제시했다.
참고 자료
참고문헌
민두기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