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족의 변천사와 한국가족을 이끄는 힘은 무엇인가? (한국가족의 특징)
- 최초 등록일
- 2007.11.17
- 최종 저작일
- 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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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론 - 한국가족의 변천사
- 이론적 배경
본론 - 가족의 구성원 → 우리 집을 이끄는 힘 … 설문지
우리가 받은 가정교육 - 禮
- 지역사회 → 혈연 중심주의의 영향 (품앗이, 종친회, 동호회)
- 한국사회 → 문화 - 명절
사상 - 孝, 禮
제도 - 가부장 제도
결론 - 한국가족을 이끄는 힘에 대해서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의 긍정적인 방향을 제시해 본다
본문내용
한 사회를 이끌어 가는 가장 큰 원동력이자 그 기초가 되는 것은 가족이다. 그중 한국의 가족은 오랜 세월 많은 변화를 겪어오면서 유지되어 왔다. 한국가족의 변천사
1. 고려시대-조선초기
남녀관계에 있어서 양계제적 혈통계승의 기반이 되는 혼인 풍속으로 고려시대의 남귀여가(男歸女家)또는 서류부가( 胥留婦家) 등의 혼속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사위가 처가로 장가드는 혼속으로, 여성들이 시집살이하는 혼속과 대조되는 모거제(matri-local system)이다. 혼인관계는 일부일처제가 일반적이며 일부이처의 예도 나타난다. 그러나 처와 첩을 차별하거나 그들의 자녀를 적과 서로 구별하여 신분을 차별하지는 않는다. 또한 여성의 재혼이 자유로워, 재혼한 여성은 그의 전 남편의 소생들을 데리고 재가한 남편의 가족과 함께 동거하며 한 가구를 이루기도 하였다. 고려에서는 50세 넘은 과부가 자손이 없으면 당연히 개가하고 40세 이상의 과녀도 자녀를 데리고 개가하였다.
친족관계의 친소(親疏)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고려의 오복제(五服制)는 외조부모를 위해 입는 상복과 친조부모에 대한 상복이 같은 것이었다. 제사 또한 조선초기까지 장자봉사(長子奉祀)를 우선시하면서도 자녀간에 차례를 돌려가면서 모시거나 비용을 담당 하는 윤회봉사(輪回奉祀)의 관행이 지속되었다. 그리고 아들이 없는 경우도 양자를 들이지 않고 딸이나 외손이 제사를 담당하였다. 이것은 재산상속이 자녀균분제인 것과도 연관성이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제사상속을 기반으로 하는 재산소유권과 상속권은 자녀균분(자녀均分)제가 대체로 유지되었다.
2. 조선중기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서 결혼제도나 여성의 지위 상에 커다란 변화가 나타난다. 조선의 창시자인 이성계는 중앙집권적 양반관료체제를 확립해 가는 과정에서 새 나라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이와 동시에 유교를 정치이념으로 삼아 왕도정치의 실현을 천명했다.
가장이 자 신의 직계가족원들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규정함으로써 법제적으로도 가부장권이 뒷받침되었다. 이와 같은 유교이념과 법제의 확산을 바탕으로 가족원의 구성과 관계의 형태도 직계가족으로 변화하면서 점차 가부장제 가족은 가장권을 제도적으로 확립하게 되었다.
상제(喪制)의 경우를 보면, 조선조 성종 대에 와서 완성된 {경국대전}의 상복제는 고려 오복제를 전승하면서 처부모 와 외조부모에 대한 규정에서 친조부모와 현격하게 차별하는 방향으로 차등을 두었다. 제례(祭禮)에서도 조선조 주자가례의 정책 적 시행은 점차 여성들의 참여나 외손. 여계의 제사 상속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변화시켜 갔다. 제사를 주관하는 권리에서나 제사 상속에서 적장자 중심으로 옮겨 갔다. 적장자에 아들이 없는 경우 제사 상속을 위한 같은 집단의 조카를 입양하는 양자제로 확립하면서, 타성의 양자를 허락하지 않는 원리가 자리잡게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상속에 장남우대와 남녀차별 의 경향이 지배적으로 되었다. 딸은 출가외인으로 모든 면에서 차별을 받게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