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거스틴의 삼위일체론과 신학사상
- 최초 등록일
- 2007.11.07
- 최종 저작일
-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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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어거스틴의 신학사상과 삼위일체론에 대한 분석입니다.
목차
어거스틴의 삼위일체론과 신학사상
1. 어거스틴의 삶과 신학사상
2. 궁극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와 어거스틴의 믿음
3. 대표저서
4. 어거스틴의 기독교관
5. 교회관
6. 죄와 은총관
7. 어거스틴의 삼위일체론
1) 삼위의 동일본질
2) 삼위의 구별
3) 삼위에 대한 성서적 논거
4) 신앙과 저서
5) 외적 사람에 있어서의 삼위일체론의 흔적
6) 내적 사람에서 발견되는 삼위일체론의 형상(Lmago)
8. 교리적 특징
9. 결론
본문내용
마침내 하느님의 사랑에 눈뜬 어거스틴은 이렇게 노래했다. 『늦게야 님을 사랑했나이다. 이렇듯 오랜, 이렇듯 새로운 아름다움이시여, 늦게야 님을 사랑했나이다!』 어거스틴은 387년 부활 성야(4월 24일 밤)에 밀라노 대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어머니 모니카가 지켜보는 가운데, 아들 아데오다투스, 친구 알리피우스와 함께 암브로시우스 주교로부터 세례를 받은 것이다. 고향 타가스테에 돌아온 아우구스티누스는 지니고 있던 모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누어주었다(388년). 그리고는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고향집에 작은 수도 공동체를 세웠다. 그들은 밤낮으로 주님의 법을 묵상하면서 단식과 기도와 선행에 전념했다(388~391년). 이미 어거스틴의 명성이 널리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온전히 수도생활에만 매달리고 싶었던 어거스틴은 혹시라도 교회의 공직을 맡게 될까봐 늘 두려워했다. 한 번은 어거스틴이 북아프리카 제 2의 도시 히포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곳에는 연로한 발레리우스가 주교로 있었다. 어느 주일날이었다. 발레리우스 주교는 자기를 도와줄 사제가 당장 필요하다고 강론 중에 하소연하였다. 때마침 그 자리에 어거스틴이 있었다. 성전에서 어거스틴을 알아본 신자들은 환호성을 올리며 몰려들었다. 어거스틴을 발레리우스 주교 앞에 억지로 데려간 그들은 사제품을 달라고 간청하였다. 어거스틴은 너무 당혹스러운 나머지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결국 이 모든 것이 삶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뜻이라 받아들인 어거스틴은 서른 일곱의 나이에 늦깎이 신부가 되었다(391년). 그는 사제품을 받으면서 자기 주교의 허락을 얻어 주교좌 성당 옆에 수도원을 세웠다(391년). 사랑과 겸손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며 수도 생활과 사제 생활을 함께 하던 어거스틴은, 발레리우스의 뒤를 이어 히포의 주교가 되었다(397년). 참된 사목자이며 탁월한 사상가로서, 모든 교부들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어거스틴의 복음적인 열정은 죽는 날까지 식을 줄을 몰랐다. 병이 깊어져 이 세상 마지막 나날을 보내는 동안에는 다윗의 참회 시편 일부를 옮겨 적어 벽에 붙이게 하고는, 침대에 누운 채 날마다 그것을 되새기고 읽었으며, 뜨거운 눈물을 끊임없이 흘렸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