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제`를 읽고
- 최초 등록일
- 2007.11.06
- 최종 저작일
- 2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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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진시황제를 읽고 나서 서평을 썼습니다.
쓰루마 가즈유키가 쓴 중국 고대사 최대희 미스터리 진시황제입니다.
목차
1.진시황과 손문 비교
2.중국 고대사 최대의 미스터리 <진시황제>의 핵심내용
*진왕 정의 탄생과 한나라 첩자 정국과 대규모 치수관개 공사
*실패로 돌아간 암살 사건
*통일제국의 사상과 제도 정비
*분서갱유, 사상을 탄압하다?
*만리장성
*시황제의 죽음
3.책을 읽고 난 뒤 나는
본문내용
흔히 중국의 혼란스러운 시기를 전국적으로 통일한 인물을 둘 꼽자면 진시황과 손문을 꼽는다. 진왕 정이 전국 시대의 칠웅을 정복하여 중국을 통일한 뒤 2000년쯤 후에 손문이 외세의 침입과 나라 안의 분열로 혼란스러웠던 중국을 다시 통일했다. 진시황은 혼란스럽고 오랜 분열시기였던 춘추전국시대의 종지부를 찍었고 그 후 전제왕정은 2000년 동안 계속되었다. 청 말이 되자 전제왕정의 힘이 약해지기 시작하면서 서구 열강들의 끊임없는 침입과 중국 내부의 분열로 중국 대륙은 혼란했다. 중국이 새로운 시대로 돌입하는 길목인 1900년대 초반 역사적 변동에 중심적인 인물은 바로 손문이었다.
쓰루마 가즈유키가 쓴 ‘진시황제(秦始皇帝)’를 읽기 전에는 이 둘의 이러한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큰 차이점이 정복의 방법에 있다고 생각했었다. 진시황제의 정복 방법은 손문이 신해혁명을 통해 중국을 통일한 것보다 폭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손문이 이끄는 혁명파가 중국동맹회를 결성하여 비밀결사인 회당과 손을 잡고 민주공화제를 지향하는 반청 무장투쟁을 하기도 했는데 왜 진시황제보다 손문은 비폭력적 노선을 걸었다고 생각이 들었는지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그 것은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진시황제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폭군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됐다. 그에 비해 손문은 현대 중국을 건설하고 중국에서 가장 추앙받는 인물로 기억에 남았다. 이런 아이러니가 또 어디 있을까? 진시황제를 둘러싼 몇 가지 사건 예를 들자면, 노애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동생들을 무참하게 죽이는 사건, 분서갱유 등의 사건을 앞뒤 상황은 살피지 않고 무차별적 폭력이라고 생각하고 손문의 무장투쟁은 폭력적이지만 진시황에 비해 비폭력적이라 생각되고 그 폭력에 정당성마저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