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답사-분황사, 황룡사지, 장항리절터, 불국사, 기림사지, 문무대왕수중릉, 감은사지
- 최초 등록일
- 2007.11.05
- 최종 저작일
- 2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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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분황사-분황사화쟁국사비부,분황사석정
2.황룡사지-금당지, 목탁지
3.불국사
4.장항리절터
5.기림사
6.문무대왕릉
7.감은사지
본문내용
황룡사
황룡사와 담장을 같이하고 있는 분황사는 선덕여왕 3년(634)에 건립되었으며, 우리 민족이 낳은 위대한 고승 원효와 자장스님이 계셨던 절이다. 643년에 자장스님께서 당나라에서 대장경의 일부와 불전을 장식하는 물건들을 가지고 귀국하자 선덕여왕은 그를 분황사에 머무르게 하였다. 또 원효스님은 이 절에 머물면서 『화엄경소』, 『금광명경소』 등 수많은 책들을 남겼다.
원효스님이 돌아가시자 그의 아들 설총은 원효의 유해로 상을 만들어 이 절에 모셔두고 죽을 때까지 공경하였다고 한다. 또한 분황사 본전 북쪽 벽에 있었던 천수대비 그림은 영험이 있기로 유명했다. 경덕왕 때 희명의 다섯 살 난 아이가 갑자기 눈이 멀자, 아이를 안고 천수대비 앞에 가서 `도천수대비가`를 가르쳐주고 노래를 부르면서 빌게 하였더니 눈을 뜨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솔거가 그린 관음보살상 벽화도 있었다고 전하며, 경덕왕14년(755)에는 무게가 30만6,700근이나 되는 약사여래입상을 만들어서 이 절에 봉양하였다고 한다. 역사가 오랜 분황사에는 많은 유물이 있었을 터이나 몽고의 침략과 임진왜란 등으로 모두 없어졌고, 지금은 분황사에 둘러놓은 어른 키만한 담장 위로 석탑의 윗 부분만이 보이는 자그마한 절이 되었다.
현재 분황사 경내에는 분황사 석탑과 화쟁국사비편, 삼룡변어정이라는 우물과 당간지주 등이 남아있으며, 석등과 대석 같은 많은 초석들과 허물어진 탑의 부재였던 벽돌 모양의 석재들이 한편에 쌓여 있다.
1965년 분황사 뒷담 북쪽으로 30여 미터 떨어진 우물 속에서 출토된 머리 없는 불상들은 경주박물관 뜰에 늘어서 있다. 분황사의 가람배치와 규모를 확인하기 위하여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1991년부터 연차적으로 발굴한 바에 의하면 『品』자 모양 1탑3금당의 창건가람배치임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이와 비슷한 가람배치는 북한에 있는 정릉사터등 고구려 초기 절터에서 조사된바 있으나 신라지역에서는 최초로 확인되어 주목을 끌고 있다. 이 후 3차에 걸친 중건과정에서 1탑1금당 형식으로 바뀌었으며, 금당의 방향도 오늘날과 같이 남향에서 서향으로 바뀌었음을 확인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