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생활
- 최초 등록일
- 2007.10.24
- 최종 저작일
-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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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정치제도 경제생활 등등...
목차
정치제도
경제생활
예술,미술과음악
일본과의 접촉등등
본문내용
중앙관제〉 백제는 북방계통의 유이민에 의해 지배계급을 이루었다. 고이왕 이후 왕은 부여씨(扶餘氏)가 세습하였고, 귀족으로 성장한 8대 성(姓:解․眞․沙․燕․b․J․木․國氏)의 세력이 커짐과 함께 왕권은 미약해졌다. 백제는 일찍이 중국 주(周)나라 육전(六典) 제도를 본떠서 삼국 중 제도정비의 선구였다. 고이왕 때부터 왕 밑에 6좌평과 16관등급 제도를 두어 행정을 맡게 하고, 또 왕의 바로 밑에는 수상격인 상좌평(上佐平)을 두어 임무를 수행하게 하였다. 그리고 각 관청의 장관들은 3년마다 선거로 뽑았다. 성왕 때 사비로 천도(538)한 이후에는 내관(內官:12부)과 외관(外官:10부)으로 이루어지는 22부의 중앙관서를 새로 두었다. 중앙의 행정구역은 상․하․전․후․중의 5부로 구분하고 부 밑에 항(巷)을 두었으며 각 부에는 500명의 군인이 주둔하였다.
〈지방관제〉 전국을 5방(方)으로 구분하고 방밑에 10군(郡)을 두었으며, 방의 장관을 방령(方領), 군의 장관을 군장(郡將)이라 하였다. 방령은 700~1,200명의 군인을 거느리고 군사적 임무도 겸하였다. 특히 무령왕 때부터는 중앙집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지방 대읍(大邑)에 22개의 담로를 설치하고 왕족을 파견하여 지방을 다스리게 하였다.
〈군사제도〉 국민개병제(國民皆兵制)로서 중앙의 5부에는 각 부마다 군사 500명씩을 배정하여 치안을 유지하였다. 지방의 5방 아래 10군을 두어 군마다 3인의 장군과 700~1,200명의 군대를 두었는데, 지휘관은 방령․군장이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