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자와 유키치
- 최초 등록일
- 2007.10.20
- 최종 저작일
- 20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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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후쿠자와 유키치 분석 리포트입니다.
목차
1.후쿠자와 유키치 개인사
2. 시대적 상황
3. 후쿠자와 유키치의 사상적 기반
4. 후쿠자와 유키치의 사상적 변화(1881년을 기점으로)
5. 후쿠자와 유키치의 대내외적인 영향과 활동
6. 쟁점- 근대화의 주도자인가? 제국주의의 대변자인가?
7. 현 시대에의 적용
8. 결론
본문내용
후쿠자와 유키치의 매우 검소하고 거짓을 싫어하는 사람이라 정평이 나있다. 흔히 후쿠자와 유키치의 7훈이라 불리는 이것은 그의 성격을 잘 반영하고 있다. 거짓말을 하지 말 것 (남이 잃어버린 물건을) 갖지 말 것 부모에게 말하지 않은 채 물건을 받지 말 것 고집부리지 말 것 형제간 싸움은 쓸데없는 짓 타인에 대한 소문은 쓸데없는 짓 타인의 물건을 부러워 하지 말 것. 이런 강직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그였기에 돈 때문에 변절을 도모하지 않고 교육을 가르치는 일에 있어서 강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어머님에 대한 애정이 매우 컸는데 이것은 나중에 충으로 이어졌다. 유키치는 충을 유교적인 맹목적 충으로 인식한 것이 아니라 공리적 집합체로서의 국민에 대한 것으로 인식했다. 그리고 유교적 인간상에서 얘기하는 체면과 명분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그것에 합당한 삶을 살기위해 물질과 거리를 둔 삶을 살았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 하다. 그것은 그가 생의 마지막에 썼던 `자존설`(1891)에 잘 실려있다. 자신이 옹호했던 에노모토가 명분을 저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자중하지 못하고 세상에 이름을 날리는 것이 온당치 않음을 꾸짖는 문장이다.
일본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는 아시아라는 좁은 틀에 얽매여 있는 일본을 벗어날 수 있는 사상적 기반을 제공한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국외적인 시선으로 봤을 때는 결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의 탈아론의 영향을 받은 일본 사람들이 팽창정책의 일환으로 계획한 전쟁-청일전쟁 등- 으로 인해 다른 국가들에게 많은 피해를 입혔던 것이다. 일본 국내적으로는 존경받고 추앙받고 있지만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봤을 때 그러한 계기를 제공한 유키치를 좋게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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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무라 신지, <<1만엔 지폐 속에 살아 숨쉬는 후쿠자와 유키치>>, 다락원,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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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인물 검색 사전, http://www.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