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초기의 군사제도의 변화
- 최초 등록일
- 2007.10.15
- 최종 저작일
- 20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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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시대 초기의 군사제도의 변화와 그 내용에 관한 레포트 입니다.
목차
머리말
1. 조선 초기 군사제도의 정비
(1) 조선 초기의 군사제도의 변경 - 10위제
(2) 사병혁파와 10위제의 변화
(2)초기 지방군제의 정비
(3) 5위체제의 확립과 중앙군제 - 5위체제의 확립
(4) 수도방위의 실제
(5) 진관체제의 확립과 지방군제
2. 군령․군정기관의 정비
(1) 군령기관의 정비
느낀점
본문내용
머리말
고려를 멸망시키고 새로이 건국된 조선은 여러 가지 면에서 고려의 낡은 탈을 벗어 던지고 새로운 체제로의 전환을 꾀하게 된다. 행정조직, 지방관제 등 여러 가지 면에 대해 고려시대의 모습을 탈피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개혁을 해갔으며 새 국가를 건설한 후 가장 중요한 조직이라 할 수 있는 군사제도에도 개혁의 손길을 뻗치게 된다. 본고에서는 조선시대의 군사제도가 고려시대와 어떤 형태로 달라졌으며 그 변천과정이 어떻게 나타나는가에 대해여 알아보도록 하겠다.
1. 조선 초기 군사제도의 정비
(1) 조선 초기의 군사제도의 변경 - 10위제
조선의 군사제도는 고려 말 중앙의 2군 6(8)위를 거의 그대로 준용하여 10위로 그 형태를 변경시켰다. 10위는 義興親軍左衛(의흥친군좌위), 右衛(우위), 鷹楊衛(응양위), 金吾衛(금오위), 左右衛(좌우위), 神號衛(신호위), 興威衛(흥위위), 備巡衛(비순위), 午牛衛(오우위), 監門衛(감문위) 등으로 각 위는 중․좌․우․전․후의 5개의 영으로 편성되었다. 하지만 10위 제도는 장교 이상을 관료체제의 정돈과 연결시켜 재편성할 방향을 정한 것에 불과하였다. 이같은 건국 초기의 10위제도에서 고려시대와 달라진 모습은 의흥친군좌․우 위 정도였다. 이들 10위는 고려시대와는 달리 각 위에 5령씩 합속 되어있기 때문에 전체 50령, 약 5만 명으로 편제되었다. 이 중 의홍친군위는 이성계 휘하 병사인 함경도 출신의 토착적 사병의 성격을 띈 조직으로서 중앙군의 실세였으며 왜구가 있을 때는 핵심 군사력에 위치해 있던 존재였다.
건국 초기에 10위 제도라고는 하나 이 제도는 장교 이상을 관료체제의 정돈과 연결시켜 재편성할 방향을 정한 것에 불과했고 사실상의 군사력은 의흥친군위에 있었다. 그 외의 8위는 고려제도를 답습하였을 뿐 실속은 거의 없었으며 이러한 불합리를 시정하기 위하여 중앙에는 정비되지 않은 각종 특수부대가 존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왕실과 중신들의 사병적 기반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중앙군에 대한 국가적 통제체제로의 전환은 건국 초기부터 시도되었다. 태조 2년(1393) 9월 고려 말부터 설치되어 있던 三軍摠制府(삼군총제부)의 의흥삼군부로의 개편은 군사의 중추기관으로서 위치가 확고해져 갔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군사권을 국가권력에 묶어두려는 왕권세력의 의지를 볼 수 있다.
참고 자료
한권으로 보는 조선왕조 실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