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의 고고학적 침략에 관하여
- 최초 등록일
- 2007.10.11
- 최종 저작일
- 20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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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실크로드에 행해진 고고학적 침략에 대해서 알아보고 이에대한 소감을 적은 레포트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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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실크로드의 고고학적 침략에 관하여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은 당시 인도및 서역 각국의 종교와 풍속 ·문화 등에 관한 기록이 실려 있다. 나체 생활의 풍속, 가봉뇌옥(枷棒牢獄)은 없고 벌전(罰餞)만 있는 법률, 장(醬)은 없고 소금만 있으며, 여러 형제가 아내 한 사람으로 같이 사는 것, 살생하지 않는 것, 흙솥에 밥을 짓는 것 등 여러 가지 색다른 풍습이 기록되어 있다. 이 중앙아시아 연구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유물은 우리나라에는 현재 남아 있지 않으며, 프랑스 고고학자 펠리오(Peliot)에 의해 돈황 석굴에서 발굴 되어 프랑스에서 소유하고 있다. 왜 돈황의 석굴에 보관되어지고 있던 유물이 프랑스 고고학자의 손에서 발굴되어 프랑스로 가게 되었는가? 이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까지 스웨덴의 스벤 헤딘, 영국의 오렐 스타인, 독일의 폰 르콕, 프랑스의 폴 펠리오, 미국의 랭던 워너, 그리고 일본의 오타니 백작에 의해서 중앙아시아에서 자행 되었던 문화재 착취의 결과이다. 이에 실크로드의 고고학적 침략에 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중국령 투르키스탄의 사원, 무덤, 유적들에서 값을 헤아릴 수 없는 진기한 유물들이 캐러밴의 행렬에 실려 외국의 박물관으로 빠져나가, 중국 땅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리게 되었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 외국인은 중국인이 제기하는 항의를 쉽게 부정 할 수 없다.” 에릭 테크먼 경은 1935년 외무성에서 파견돼 고대 실크로드를 따라 여행한 경험을 쓴 저서 ‘투르키스탄의 여행’에서 그와 같이 썼고,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초기 불교 문화에 속한 고대 필사본, 프레스코와 유물들을 투르키스탄 전역을 다니며 어떻게 싫어나갔는가에 대해 기술한 외국 탐험가들의 저술을 중국인이 읽을 때마다 그들은 끓어 오르는 분노로 몸을 떤다”고, 이는 중앙아시아서 자행된 고고학적 침략에 관한 중국의 항의를 바라보는 서양 사람들의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돈황지역을 중국이 지배한 것은 전 중국 역사를 통털어서 불과 300년 정도에 불과하다. 이 지역의 주인은 여러번 교체 되었는데 사실상 이 지역의 주인은 티벳계의 탕구트인과 투루크계의 위구르인들이 그 주인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 자료
-두산세계대백과사전-(두산)
-실크로드의 악마들- 피터롭커크(사계절)
-보물추적자 -에베르트, 볼프강(푸른숲)
-http://www.buddhanews.com/HTML2/2003/buddha_19672.html
-http://blog.naver.com/towander.do?Redirect=Log&logNo=140006118220
http://www.bupsa.or.kr/news/200312/0312132-05.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