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포로수용소
- 최초 등록일
- 2007.09.21
- 최종 저작일
- 20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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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거제도에 있는 포로수용소에 관한 레포트 입니다.
포로수용소가 어떻게해서 생겨나게 되었는가 그 설치배경과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수용시설 및 규모, 휴전회담의 개막과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포로 저항 운동, 휴전과 포로 송환에 관해 다루었습니다.
목차
거제도 포로수용소
가. 설치배경
나. 수용시설 및 규모
다. 휴전회담 개막과 포로 저항 운동
라. 휴전과 포로 송환
본문내용
거제도 포로수용소
가. 설치배경
전쟁 기간 중에 획득되는 포로를 모아서 관리하는 곳으로는 포로수집소와 포로수용소가 있다. 한국전쟁 기간 중에도 전선에서는 포로수집소, 후방에서는 임시 포로수용소 또는 영구 포로수용소가 설치 ․ 운영되었다. 이것들은 전황에 따라 수시로 설치 ․ 이동 또는 폐쇄되었다. 또 그 시설은 포로 수용과는 관계없는 기존 군 막사의 일부나 학교 건물 또는 형무소 등을 주로 사용하였다. 따라서 시설 규모에 따른 합리적인 인원의 수용이라든가 체계적인 경비 및 조직적인 관리라는 측면에서 적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
본격적으로 포로를 수용하는 시설을 갖춘 것은 1950년 7월 말에 부산에 설치된 제1포로수용소였다. 이것은 유엔군총사령부 관할 하에 운영된 것으로 한국군 및 유엔군이 전쟁 중에 포획하는 포로 전부를 이곳에 집결시켜 장기적으로 수용 ․ 관리하려는 것이 그 설치 목적이었다.
이후 다른 포로수집소 및 임시 포로수용소에서 수집 ․ 분류된 모든 포로들이 여러 경로를 거쳐 이곳 부산으로 후송 ․ 집결되었다. 그리하여 부산포로수용소는 한동안 한국군 및 유엔군이 획득하는 포로 전체를 수용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런데 인천상륙작전을 계기로 하여 전세가 역전되면서 낙동강선에서의 반격이 이루어지자 유엔군이 포획하는 북한군의 포로 수가 갑자기 증가하게 되었다. 즉, 8월 말에는 2천명도 되지 않던 포로가 9월 한 달 동안에 9천명이 증가하여 1만 1천명에 육박하더니 10월말에는 6만 2천여명, 11월 말에는 약 9만 7천명, 그리고 12월 말에는 13만 5천여명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포로의 수가 증가하고 그들을 수용·관리하는 문제가 어려워지자, 유엔군사령부는 그 대책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포로를 분산시켜야 할 필요성과 공산포로들에 의해서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려된 대책은 전선에서 멀리 떨어지고 육지와도 격리된 섬으로 포로를 옮겨 놓는 방법이었다. 이때 유엔군사령부가 수용소 후보지로 생각한 섬이 제주도였으나 제주도의 상황이 그다지 좋지 못하여 새로운 위치가 논의되었고 여기에서 거제도가 포로수용소 후보지로 떠오르게 되었으며, 결국 이 섬이 포로수용소 이전 장소로 최종 결정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