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차문화
- 최초 등록일
- 2007.08.19
- 최종 저작일
- 2007.08
- 20페이지/ MS 파워포인트
- 가격 1,000원
소개글
조선시대의 차에 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음다 풍속의 퇴조 원인
2. 조선시대의 차문화
3. 조선인의 음다 생활
4. 조선의 다구
5. 조선시대 다인
본문내용
1. 조선시대의 차(茶)
음다 풍속의 퇴조 원인
조선시대 주자학이 정치 이념으로 선택
불교의 배척 정책으로 인하여 절의 재정상태가 나빠져 차를 관리하는 것이 힘들어 졌다. 따라서 불교와 더불어 번성했던 다 문화는 퇴조했다.
과도한 다세
가난
세종 때도 굶어죽은 사람이 있었으며, 임진왜란 때는 정치적, 경제적으로 피폐해졌다. 그러므로 끼니를 잇지 못했는데 차를 끓여 마실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조선인의 생활습관의 변화
일반가정의 제례에서도 청주를 많이 사용하였으며 일상생활에 담배와 술 같은 기호품의 성행과 좋은 생수와 식탁에서 숭늉을 많이 마시는 등 조선인의 생활 습관 등도 차 문화의 쇠퇴 원인으로 볼 수 있다.
2. 조선시대의 음다 풍속
다방
사신에게 다례를 베풀거나 조정이나 왕실의 다례를 주관하는 일을 맡음
차모
각 관청에서 관리들의 차 심부름을 하기 위해 선발된 사람
다시
사헌부 관원들이 공정한 판결을 위해 매일매일 일정한 시간에 모여 차를 마시며 의논한것
야다시
재상이하 누구든지 간사하거나 부세를 많이 거두고 백성을 해치거나 재물을 탐내는 사람이 있으면 여러감찰들이 야다시를 이용하여 그 사람의 집 근처에 가서 죄를 논하고 흰 판자에다 한 내용을 적어서 그 집 문위에 걸었는데 야다시를 당한 사람은 다시는 의관 반열에 들지 못하는 기물 취급을 받았다.
3. 조선인의 음다 생활
문인들의 다 생활
소박한 음다생활
조선시대의 문인들은 대체로 대자연 속에서 소박하게 차를 즐겼다.
安分知足의 다생활을 하였다.
뜻을 같이 하는 차
조선시대의 선비들은 여럿이 모여 공통된 뜻을 확인하고 결속하는 의미로 차를 마시기도 했다.
선 수행하는 차
조선시대의 선비들은 차를 마시며 선 수행을 하였다.
茗禪
문인화와 차
선비들의 그림인 문인화에도 차를 끓이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