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세션운동과오토바그너
- 최초 등록일
- 2007.08.18
- 최종 저작일
- 2007.05
- 57페이지/ MS 파워포인트
- 가격 1,000원
소개글
시세션운동의 시작과 오토바그너의 관계를 설명
목차
없음
본문내용
시세션---독일, 오스트리아
신예술양식인 아르누부의 영향을 받아 1897년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의 성행한 운동으로 과거의 모든 예술로부터 분리를 목표로 하고 새로운 시대의 예술을 창조하자는 운동이다. 근대 디자인의 혁신적 예술운동으로 제체시온이라 부른다.-분리파(실용주의)
한편 빈 분리파(Sezession) 운동의 건축가들은 이성이나 논리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아르누보와는 대조적으로 고전주의 건축을 시도했다. 오스트리아의 O. 바그너, J. M. 올브리히, J. 호프만 등은 대표적인 건축가들이다. 분리파운동의 건축은 리트벨트의 슈뢰더 주택(1924) 등에 계승되었다(→ 아르 누보).
비엔나 아르누보라고 불리우는 시세션(분리파)은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아르누보와는 조금은 다른 형태의 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세계적인 유행을 창출했던 아르누보의 기본적인 디자인 특징에서 볼 때 식물의 곡선을 그 모티브로 삼았던 국제적인 아르누보 스타일과는 달리 오스트리아에서는 주로 직 선적인 스타일을 추구하였다. 또한 오스트리아의 아르누보는 사회적 역사적 배경 또한 다른 상황에 있었다.
프랑스나 영국 등에서는 부르주아지의 등장이 스스로의 힘에 의해 형성되었지만, 오스트리아 의 부르주아지는 외부의 힘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점이 시세션의 결정적인 역사적 사회적 배경이 되었다.
1866년, 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하였기 때문에 오스트리아의 귀족중심의 구질서가 붕괴되고 부르주아지가 등장하게 되었다.
즉 오스트리아의 부르조아지는 새로운 지배계층으로서 사회를 경영 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여전히 귀족의 도움이 필요로 하였다.
특히 사회 경영의 핵심인 정치 분야 에 있어서 귀족과 결탁 또는 합의가 없어서는 안되는 딜레마에 있었던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부르주 아지는 결국 예술을 도피처로 삼았고 그들은 정치에 무관심하며 예술을 바탕으로 자신의 실내와 주변 을 디자인하는 이른바 종합예술을 실현하려는 것에 몰두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인 배경에서 비엔나의 분리파, 시세션 운동은 일어나게 되었기 때문에 역사는 그들을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일어난 ‘반아카데미즘 미술운동’으로 규정한다.
참고 자료
블러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