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건의 서역 원정 동기, 그리고 그 이후
- 최초 등록일
- 2007.08.07
- 최종 저작일
- 20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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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서문명의 만남`수업에 제출한 리포트
목차
1. 서론
2. 전한 초기의 한과 흉노의 관계
3. 장건의 서역 원정
3-1. 대월지에 사신으로 간 장건
3-2. 계속되는 장건의 서역 원정
4. 장건의 서역 원정, 그 이후
4-1. 흉노를 몰아내다
4-2. 장건의 원정이 가지고 온 부산물들
5. 결론
본문내용
1. 서론
우리는 지금까지 수많은 탐험가들의 이름을 들어 왔고, 또 그들의 탐험기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들어 왔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탐험가들의 ‘탐험 내용’에 주목하고, 불가능할 것만 같은 탐험을 성공시킨 것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지만, 탐험가들이 ‘무엇 때문에’ 위험한 탐험을 감행했는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기울이는 편이다. 설사 탐험의 이유에 대해 물어본다 하더라도, 대부분 ‘미지의 세계에 가 보고 싶어서’, ‘편견을 깨기 위해서’ 등 대체로 개인적인 이유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장 잘 알려진 탐험가 중 하나인 콜롬버스의 예를 들어 보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콜롬버스가 서인도 제도를 발견했다’거나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편견을 깨기 위해서 서쪽으로의 항해를 시도했다’ 정도의 지식은 가지고 있지만, 왜 콜롬버스가 서쪽 항로를 개척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해는 부족한 편이다.
동양에도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탐험가가 있다. 바로 ‘장건’이다. 장건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은 ‘실크로드를 개척한 인물’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뒤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겠지만, 장건이 왜 서역 탐험에 나섰는지는 의외로 제대로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여기서 잠시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면, 과연 장건을 순수한 ‘탐험가’로 부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장건을 흔히 ‘탐험가’로 분류하고는 있지만, 사실 장건은 탐험가라기보다는 중국의 사신 자격으로 서역을 탐방하고 온 것이다. ‘탐험가’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위험을 무릅쓰고 어떤 곳을 찾아가서 살펴보고 조사하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 ‘네이버 국어사전’ 참고
이라고 되어 있다. 장건은 분명 탐험을 한 것은 맞지만 이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니 엄밀히 말해 장건을 탐험가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방금 우리는 장건이 중국, 엄밀히 말하면 전한(前漢) 무제의 사신 자격으로 서역을 다녀왔다는 사실을 잠시 확인했다. 그렇다면 장건의 탐험은 사신 모집에 응한 장건 자신의 의지도 있었겠지만 한나라에서 서역에 사신을 보낼 필요성 때문에 이루어졌다는 점이 확인된다. 왜 한 무제는 머나먼 서역에까지 장건을 보내야만 했을까? 그리고 장건을 서역에 보내어 얻어낸 것은 무엇이었을까? 지금부터 우리는 이 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장건의 서역 개척이 이후 중국을 비롯한 세계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서까지 확인해 볼 것이다.
참고 자료
사마천, 정범진 역,《사기열전 하(下)》, 까치, 2004
사와다 이사오, 김숙경 역,《흉노》, 아이필드, 2007
이성규,〈한무제의 서역원정·봉선·황하치수와 우·서왕모신화>,《동양사학연구》72, 동양사학회, 2000년 10월
이케가미 쇼지 외, 강미혜 역,《영웅의 역사 10 : 천하의 모험가》, 솔출판사,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