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중국의 혼인
- 최초 등록일
- 2007.07.28
- 최종 저작일
- 20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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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국의 옛 혼인문화에 대한 보고서
목차
I. 서론
II. 본론
1. 약탈혼
2. 다중 혼인
3. 축첩
4. 매매
본문내용
과거로 돌아가서 부권사회가 성립하기 시작하는 시기의 혼인은 말 그대로의 혼인이었다. <<백호통(白虎通).가취(嫁娶)>>편에 보면
“왜 혼인(婚姻)이라고 불렀는가? 어두울 때 식을 올리기에 붙여진 이름이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통전(通典)>>은 고대의 예의서(禮書)를 인용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이러하다.
“혼인은 조금도 경사로울 게 없는 인간사이다.”
“처를 맞아들이는 집은 삼 일 동안 풍악을 울리지 않는다.”
이와 같은 혼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들은 이 부권사회 성립기에 이루어진 약탈혼에서 비롯된 것이다. 시작은 아주 예전이라고는 하나 1950년 중국 사회주의 정권이 ‘새 혼인법’을 제정하기 전까지 광범위하게 성행했다고 하니 그 동안의 중국 혼인 풍습은 약탈혼의 풍습으로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각 소수 민족 별로 모습들은 조금씩 다르지만 그 방법은 남자가 여자를 훔치는, 즉 납치하는 약탈혼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남자는 친구들을 끌어 모아 그 여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거나 어떤 민족은 여자 집으로 쳐들어가서 여자를 납치해 온다. 여자의 견해 따위는 이미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다. 이미 정혼한 여자라 해도 상관없다. 여자를 납치해 온 후 며칠이 지나면 여자의 집으로 찾아가서 흥정을 한다. 말이 혼담이지 폭력적인 남자 쪽에 의해 여자 쪽 가족들은 여자를 파는 것이나 다름없게 된다. 가족들이 반대한다면 돌아오는 것은 보복 일 것이고, 그런다고 딸을 되찾아 올 수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에도 이러한 약탈혼이 보쌈이라는 말로 행해지고 있었으나 한국과 중국의 차이점은 중국은 1950년대까지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억지 혼인 풍습은 신부의 도망 또한 일반적인 모습으로 만들었다.
참고 자료
<사대부와 술, 약 그리고 여자> 김인숙, 서경문화사
<중국여성 잔혹 풍속사> 이영자,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