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경제]역사속의 혁신-최재우
- 최초 등록일
- 2007.07.25
- 최종 저작일
- 20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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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선조들에게서 혁신을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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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역사에서 패배한 자에대해 연민(憐憫)을 갖지 않으면 우리는 그 시대의 거짓 신화에 파묻히고 만다.(배링턴 무어)
요승(妖僧) 묘청, 그 덧칠된 신화에 맨 먼저 칼을 들이댄 것은 단재 신채호였다.
그는 묘청의 난을 조선의 역사 일천년 이래 가장 큰 사건이라고 칭했다. 조선의 역사 일천년 이래 가장 큰 사건 묘청의 난에서 격돌한 묘청과 김부식은 북벌파(北伐派)와 사대파(事大派)를 각각 대변했다. `국풍(國風)의 진취사상과 한학(漢學)의 수구사상의 한판 승부였던 것이다.
이는 고려 중세 왕권을 좀먹고 있던 개경의 문벌귀족과 이를 갈아엎으려는 지방출신 신진관료들의 정치적 헤게모니 싸움이었다. 왕을 황제라 부르고 금나라를 치자는 칭제건원론과 금국정벌론은 민족적 기상의 표출이자 고토(故土) 회복을 위한 정치적 슬로건이었다.
그러나 묘청의 실패 이후 이에 대한 기록은 김부식에 의해 철저히 누락되고 왜곡되었다. 중국이 사마천의 사기를 통해 춘추전국시대를 읽었듯이, 우리는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통해 삼국시대를 읽어야만 했다.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묘청을 고려사 열전의 `반역전`에 올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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