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향과 정몽주
- 최초 등록일
- 2007.06.25
- 최종 저작일
- 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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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안향과 정몽주
목차
안향 (安珦 ; 1243~1306)
Ⅰ. 성장과정과 시대적 상황
Ⅱ. 관직으로의 진출과 성리학의 유입
Ⅲ. 성리학의 보급와 배불사상
정몽주 (鄭夢周 ; 1337~1392)
Ⅰ. 성장배경
Ⅱ. 관직으로의 진출
Ⅲ. 이성계의 대립과 최후
Ⅳ. 성리학의 전파와 빈민구제
본문내용
안향 (安珦 ; 1243~1306)
Ⅰ. 성장과정과 시대적 상황
안향은 1234년(고려 고종 30년)에 흥주성(興州城) 평리촌(坪里村)에서 태어났다. 부는 의업출신인 주리 안부(安孚)였고, 모는 예빈승(藝賓丞) 동정(同正) 우성윤(禹成允)의 딸 강주(剛州) 우씨(禹氏)였다. 초명은 유(裕)였으며, 뒷날 향(珦)으로 고쳤으나, 조선시대에 이르러 문종의 어휘가 그의 이름과 같았으므로 그를 피하기 위해 초명인 유를 사용한 때도 있었다. 본관은 순흥(順興;경북 영주의 순흥면)이며 자는 사온(士蘊)이고 호는 회헌(晦軒)이며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그가 탄생한 시대적 상황을 살펴보면 무인의 난 폭거 후 무인집정이 시작된 지 46년이 된 시기였고, 그뿐 아니라 1231년 몽고군의 침입으로 고려 정부가 강화도로 천도하는 등 내우외환의 시기였다.
그는 어린시절에 인근의 숙수사에 왕래하면서 독서를 하였는데 이는 장기간에 걸친 무인집정과 몽고와의 전란으로 교육기관은 모두 폐허가 됐기 때문이다. 고려는 개국초기부터 유불융화책을 실시함으로써 사찰이 유교의 교육장을 겸하고 있었으므로 숙수사에도 불교경전뿐 아니라 유교 경전도 소장되고 있었던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