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의 대외관계와 무역
- 최초 등록일
- 2007.06.16
- 최종 저작일
- 20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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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발해와 신라-남북국시대의 문제, 발해와 당-발해의 민족사적 귀속문제, 발해와 일본
발해와 돌궐 및 서역과의 관계, 발해의 대외무역에 관한 글입니다.
목차
1. 발해와 신라-남북국시대의 문제
2. 발해와 당-발해의 민족사적 귀속문제
3. 발해와 일본
4. 돌궐 및 서역과의 관계
5. 발해의 대외무역
본문내용
발해의 대외관계에서 신라와의 관계가 조명을 받기 시작한지는 얼마 되지 않고 양국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가 진행된 것은 1980년대 이후였다. 이는 신라사 중심의 한국사 인식이나, 당나라 중심의 국제질서관이 장애요인이라 할 수 있다. 비록 양국관계에 대한 기록이 없다고 해도 남북의 교섭과 대립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신당서』에 신라도(新羅道)가 있었다는 기록이나, 『삼국사기』의 신라 천정군에서 발해의 책성부까지 39개의 역과 함께 양국의 관문인 탄항관문(炭項關門)이 설치되어있다는 사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아무튼 신라에서 두 차례에 걸쳐 발해로 사신을 파견하였다든지 발해가 건국과 멸망의 시점에 신라에 사신을 파견하여 도움을 청한 사실 등은 양국간의 역사적 관계가 유기적이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다.
한국사에서 신라와 발해의 관계를 ‘남북국시대’로 설정하는 문제는 큰 논쟁거리이고, 우리 민족의 민족사적 얼개가 걸려있는 문제이기에 발해와 신라의 관계는 한국학계에서 가장 관심을 갖고 논의 , 연구해 왔다. 중국과 일본 등에서는 주로 발해의, 당과 일본과의 교섭에 관심이 집중되어 왔는데 특히 중국학계는 발해와 신라의 관계를 논급하는 것 자체를 터부시하고 있는 입장이다.
참고 자료
김정배 <고대사 입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