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무령왕릉과 공산성을 다녀와서
- 최초 등록일
- 2007.06.08
- 최종 저작일
- 20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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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공산성과 무령왕릉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담겨져 있습니다.
목차
1. 들어가는 말
2. 시작하기
-한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하는 공산성
♠ 공북루 (拱北樓)
♠ 공산성 연지(公山城 蓮池)
♠ 쌍수정(雙樹亭)
♠ 추정왕궁지(推定王宮地)
♠ 연못(蓮池)
♠ 금서루(錦西樓)
♠ 진남루(鎭南樓)
♠ 명국삼장비(明國三將碑)
♠ 광복루(光復樓)
♠ 임류각(臨流閣)
♠ 영은사 대웅전(靈隱寺 大雄殿)
♠ 동문루(東門樓)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무령왕릉(송산리 고분군)
본문내용
공산성(公山城)은 백제시대의 웅진성으로서 백제 도성(都城)의 역할을 담당했던 대표적인 고대 성곽이다. 백제 멸망 이후 행정적으로는 여전히 공주가 되었으므로 공산성 역시 계속적인 수축(修築)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백제 멸망 직후에는 웅진도독부로서, 통일신라시대에는 웅주로서, 조선시대에는 충청도의 감영 소재지로서 지방 행정의 중심적 거점을 이루었다. 특히 신라 현덕왕 14년(822)에 일어난 김헌창의 난은 공산성을치열한 격전장으로 만들기도 하였으며, 조선시대 이괄의 난으로 인한 인조의 공주성 파천은 공주성의 요새지로서의 기능을 재확인한 사례라 하겠다.
원래 토성(土城)이었던 공산성이 석성(石城)으로 개축된 것은 조선 선조 29년(1596)과 선조 36년(1603) 및 인조 원년(1623) 등의 기록들에 나타나 있다.
공산성은 조선 인조 2년(1624) 이후 왕의 파천으로 `쌍수(雙樹)`의 명을 특사(特賜) 받아 쌍수산성으로 칭하여져 왔고 1913년 공원제도의 창설에 따라 쌍수산성공원으로 부르게 되었다.
공산성(公山城)은 사적 제12호로 공주시 금성동, 산성동, 옥룡동에 걸쳐 있는 백제시대의 토성(土成) 400m조선시대 석성 2260m 성곽으로 둘레 2, 660m, 면적 21만㎡이며, 남으로 시가(市街)와 연결되고, 북으로는 금강(錦江)의 연안에 접해있는 해발 110m의 분지형 야산에 위치하며, 동서의 길이가 약 800m. 남북의 길이는 약 400m의 포곡형(包谷形) 형태를 띄고 있다.
성내의 면적은 약 72,000평이며, 성내에는 영은사, 공북루, 쌍수정사적비, 명국삼장비, 연지, 진남루, 쌍수정, 광복루 등이 있다.
현재 공산성에서 출토된 중요 유물 및 발굴 관련 사진자료 등은 공주대학교박물관에 전시되어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