쯔빙글리와 루터의 차이점
- 최초 등록일
- 2007.06.03
- 최종 저작일
- 20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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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사학과 전공수업인 유럽문화 수업을 들으면서 작성한 과제입니다.
목차
1. 두 인물의 사상적 경향
2. 개혁활동의 비교
3. 쯔빙글리와 루터의 관계
4. 종교개혁에서의 차이점
5. 종교개혁사적 의의
본문내용
둘째, 쯔빙글리의 개혁활동의 범위는 처음부터 루터의 그것보다 훨씬 광범위하였다. 쯔빙글리는 성서의 학도가 되기 전에 인생을 알기 위하여 배웠으므로, 그가 국가와 정부까지도 그의 개혁활동의 범위내에 포함시킨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며, 그는 신권정치의 이상을 따랐다. 루터는 국가와 교회가 필요한 경우에는 제휴할수도 있다고 암시하였으나, 쯔빙글리는 국가와 교회가 인간의 육체와 영혼의 관계와 같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믿었다. 그에 의하면 속권은 교회의 질서를 감독해야 하며, 한편 교회의 성서는 국가의 법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반 법률의 타당성은 그것이 성서에 부합되느냐에 달려 있으며, 정부가 기독교적 표준에 미달되면 그 때에는 혁명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또한 루터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근본주제로 삼고 영적 순례의 고뇌의 길을 따랐다면, 쯔빙글리는 애국적이며 지적인 사고의 길을 따랐다. 쯔빙글리의 애국심은 당시 스위스의 많은 부락과 도시들이 수입의 원천으로 삼고있었던 용병제도의 실행에 반대하는데서 나온 것이다. 수세기 동안 스위스인들은 군인으로서 명성을 날렸고, 그 명성으로 인해 외국의 군주들에게 용병으로 고용되었다. 쯔빙글리 시대에는 이러한 제도가 일반적으로 용납되었으며, 반대하는 소리가 거의 없었다. 쯔빙글리 자신도 용병제도를 지원했으며, 이득도 보았지만, 군종사제로서 전쟁을 경험한 후, 무가치한 일로 생명을 잃는 것과 돈에 의해 용병들이 쉽게 팔려가는 것을 보고 용병제도를 공격하게 된다. 해가 지나면서 이러한 애국적인 관심은 교회의 개혁과 깊은 관련을 맺게 된다. 따라서 쯔빙글리의 개혁운동은 항상 민족주의적이며 정치적인 색채를 띠며,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