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필의 생애와 활동 및 평가
- 최초 등록일
- 2007.05.31
- 최종 저작일
- 20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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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서재필은 본관이 대구이며 호는 송재(松齋)이고 미국 귀화명은 필립 제이슨(Philip.Jaisohn)이며, 한국 최초의 박사학위 소지자이기도 하다. 그는 1864년 1월 7일 전라남도 보성에서 부친 서광효의 차남으로 출생했고 충남 논산에서 자랐다. 7세 때 서울에 올라와 당시 판서직에 있었던 외삼촌 김성근 밑에서 한학을 배웠고, 1882년 실시된 별시문과 병과에 세 번째로 합격하였다. 그 때부터 서재필은 김옥균, 서광범등과 친인척관계로 자연스럽게 어울렸고, 이들과 지내면서 개화에 관한 지식과 국제 정세에 대한 감각을 키워나갔다.
1884년 12월 김옥균·홍영식 등과 갑신정변을 일으켜 수구파들을 제거하고 국왕을 이용하여 위로부터의 개혁을 시도하였다. 이 때, 서재필은 18세의 젊은 나이로 병조참판 겸 정령관이 되었으나 정변은 3일 만에 실패하고 그로인해 그는 역적의 낙인이 찍혔고 그의 부모, 처와 형은 음독자살하였으며 2살 된 그의 아들은 굶어죽었으며, 그의 동생은 처형되는 화를 입었다. 결국 그는 김옥균, 박영효 등과 함께 일본으로 망명을 갔다. 일본에서도 한국과의 외교문제로 그들을 냉대하자 그는 1885년 4월 박영효, 서광범과 함께 미국으로 다시 망명을 갔다. 미국에서 그는 1889년 조지워싱턴대학에 입학하였고, 졸업 후 세균학을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고, 1893년 30세의 나이로 졸업하면서 의사 면허를 취득하였다. 그 동안 역적으로 낙인찍힌 고국에 영원히 돌아갈 수 없을 것으로 판단하여 미국사회에서 적응 하기위해 노력하였고 1890년 6월 미국 시민권을 얻어 귀하를 하였다. 1894년에는 미국인 여성과 재혼까지 하였다.
참고 자료
*강만길 『고쳐 쓴 한국 근대사』
*강준만 『카멜레온과 하이에나』
*주진오 『유명 인사 회고록 왜곡 심하다 : 서재필 자서전』
*네이버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