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청계천 답사 보고서
- 최초 등록일
- 2007.05.18
- 최종 저작일
- 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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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청계천 답사 보고서입니다.
목차
Ⅰ. 들어가며
Ⅱ. 답사코스
Ⅲ. 들어가며
Ⅳ. 답사내용
1. 청계천의 역사
1) 청계천의 탄생 2)조선시대의 청계천
3)일제강점기의 청계천 4)1950년대 이후의 청계천
2. 청계천 복개의 배경
3. 청계천 복개로 인한 문제점 해결
1) 안전성의 문제 2)도심 기능의 문제 3)새로운 관광자원의 개발
4. 청계천 복원공사의 현재 모습
1)청계천 복원사업의 의미
2)지속가능성에 기초한 강남ㆍ북 지역 균형 발전
3)하천중심의 도시환경 복원
Ⅴ. 느낀점
Ⅵ. 참고문헌
본문내용
Ⅳ. 답사 내용
1. 청계천의 역사
1)청계천의 탄생
청계천은 도성 주변의 산과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들이 모여 도성 한가운데를 동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도심하천이었다. 청계천은 하천 조성과정이나 도시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는 지리적인 위치 상 조선왕조 500년 동안, 근대 100년 동안의 서울의 역사문화, 서울사람들의 일상생활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된 것은 필연적이었다.
2)조선시대의 청계천
청계천은 조선시대 역대 임금들이 왕정(王政)을 펼친 정치적인 공간이었다.
조선왕조의 기틀을 잡은 제3대 태종은 수도건설, 시전(市廛) 설치와 함께 개천을 정비함으로써 서울의 도시형태가 완성되었다. 제4대 세종은 개천으로 흘러 들어오는 지천을 정비하였으며, 개천에 흐르는 물의 깊이를 미리 헤아리기 위해 수표(水標)를 설치하였다. 조선후기에는 제21대 영조는 개천을 준설하고 정비하는 대대적인 역사를 일으켰다. 이후 개천 준설작업은 영조의 준천을 표준으로 지속적으로 시행되었다.
3)일제강점기의 청계천
일제강점기에 ‘개천’은‘청계천’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이기 시작했다. 언제 어떤 연유에서 청계천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는지 정확하지 알 수 없다. 청계천을 경계로 한 북촉에는 조선인들이 남촌에는 일본인들이 주로 거주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도시 기반 시설 정비를 위한 모든 재원이 일본인들의 거주지인 청계천 이날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졌고, 새로운 건물도 이 일대에 세워졌다. 청계천 관리에서도 일본은 청계천을 더러운 하수구로 취급하며 “탁개천(濁烗川) ”이라는 냉소적인 표현을 쓰며 방치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