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의 2차 가공
- 최초 등록일
- 2007.05.01
- 최종 저작일
- 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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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농산가공학 시간에 쓴 레포트 입니다.
목차
Ⅰ. 서론(序論)
1. 쌀(㐘)의 역사와 쌀 문화
2. 쌀의 영양성분
-쌀 의 기 능 적 우 수 성
3. 쌀 소비량의 변화
Ⅱ. 본 론(本論)
■ 떡 ■
1. 떡의 어원
2. 떡의 역사
3. 떡의 문화
4. 떡의 분류
5. 떡의 제조과정과 공정 현황
6. 떡의 상품화
Ⅲ. 결론(決論)
본문내용
Ⅰ. 서론(序論)
벼의 2차 가공품에 관하여 말하기 앞서 원료가 되는 쌀에 대한 역사나 영양 성분 등에 관하여 먼저 알아보겠다.
1. 쌀(㐘)의 역사와 쌀 문화
벼 재배의 기원(基源)은 인도 기원설, 동남아 기원설, 중국 기원설이 있다. 인도 기원설은 오리사, 하라파 유적에서 발굴된 벼로 약 4,000년 전으로 알려져 있다. 동남아 기원설은 태국(泰國)을 중심으로 약 5,500년 전, 그리고 중국(中國)기원설은 양자강 유역인 하모도 유적지에서 발굴된 탄화미로 약 7,000년 전이고 황하강 유적지에서 발굴된 탄화미(炭化米)는 5,200년 전으로 세계최고(世界最古)의 기록이다.
우리나라의 벼 재배 역사는 1991년 6월 경기도 고양군 일산읍 가와지 유적지의 신석기시대 토층에서 4,300년 전인 B.C 2,300년경의 자포니카 볍씨 4개가 발굴되어 우리나라 벼농사는 4,300년 전에 이미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벼(나락)와 쌀의 어원(語原)을 보면 벼는 인도말 ‘브리히’가 벼, ‘니바라’가 나락의 어원이고, 쌀은 고대 인도어인 ‘사리’가 어원(語原)으로 퉁구스에서 ‘시라’로 우리나라에서 ‘쌀’로 단축되었다. 조선조 후기 ‘동이록’에는 벼를 ‘라록’이라 기록하였고, 이는 신라시대 관리들의 급료를 벼로 주었기 때문에 신라의 봉록이라는 말에서 ‘나록’이 ‘나락’으로 변천(變遷)되었다는 일설이 있다.
우리민족의 쌀 조리문화(調理文化)를 살펴보면 처음부터 쌀로 밥을 지어먹지는 않았다. 쌀재배 무렵인 농경시대의 주거 유적물을 살펴보면 곡물을 이용한 최초의 조리형태는 볶은 쌀 형태였다. 그 후 죽과 밥의 형태였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떡의 형태로도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다음으로는 서기 4~5세기경부터 곡물을 끓여 짓는 밥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밥의 형태를 주식으로 하고 장류․포․젓갈 등을 반찬으로 하는 일상식(日常食)의 기본구조 즉 우리의 독특한 식생활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하였고, 일찍부터 발달한 떡은 의례용이나 행사용 등의 특별한 음식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참고 자료
한국조리과학회지 제 18권 5호(2002)
한국조리과학회지 제 20권 1호(2004)
동아시아식생활학회지 제 4권 1호(1994)
한국조리과학회지 제 18권 5호(2002)
한국식품영양학회지 제 9권 1호(1996)
한국식품저장유통학회-식품저장과 가공산업 제 2권 1호
한국의 떡, 한과, 음청류. 윤숙자. 지구문화사. 1999
우리음식 백가지. 한복진. 현암사.
한국식품개발연구원 홈페이지(http://www.kfri.re.kr)
쌀 사랑회 홈페이지(http://ricelove21.com)
미도떡집 홈페이지(http://www.eddu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