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듬과 문학
- 최초 등록일
- 2007.04.13
- 최종 저작일
- 2007.01
- 6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소개글
문학에서 운율과 리듬이 하는 역할 알아보기
목차
- 운율과 문학
- 시의 리듬 개념
- 리듬이란?
- 리듬은 삶이다
- 문학이란?
- 문학에서 리듬
본문내용
리듬은 삶이다
리듬은 생명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리듬은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리듬은 태초부터 사용되어 왔다. 그 증거로 제의와 신화적 이야기를 상상해보면 알 수 있다.
제의와 신화적 이야기는 리듬과 의미를 분리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리듬은 어떤 힘들을 매혹시켜 사로잡고, 다른 힘들을 쫓아내는 즉각적인 목표를 갖는 마법적 방법이었다. 또한 리듬은 기념하기 위한 것 혹은 좀더 정확히 말하면, 어떤 신화-악마의 출현이나 신의 도래, 한 시대의 종말이나 새로운 시대의 시작-를 재상산하기 위한 것이다. 우주적 운율의 닮은꼴로서, 말 그대로 인간이 원했던 것-기우, 풍요로운 사냥 혹은 적의 죽음-을 만들어낼 수 있는 창조적 힘이었다. 춤은 이미 씨앗 상태의 표상을 품고 있다. 또한 춤과 무언극은 연극이며 의식, 즉 제의였다. 리듬은 제의였다. 옥타비오 파스『활과 리라』,솔
옥타비오 파스가 말한 것처럼 리듬은 인간의 바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경쾌하고 슬픈 리듬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리듬 속에는 시인이나 무당의 이데올로기가 들어가 있기 마련이고 사람들의 삶을 말해 준다. 리듬은 삶의 움직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삶은 출렁인다. 삶의 모든 것은 부단한 생성의 과정 속에 있다. 자아나 의식 언어와 사고, 현실과 세계는 쉼 없이 만들어지는 가운데 스스로를 변모시키면서 존재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그 어떤 것도 특권적 지위를 가지지 않는다. 어느 하나가 본질적 영역이어서 다른 영역을 부차적인 것으로 삼는 본질/현상의 관계는 삶에 없다. 그것은 서로 이어지면서 상호 의존적이다. 그것은 스스로의 자율성을 누리면서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전체적 구조의 틀을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현실이 하나의 법칙으로 고정될 수 없는 것이라면, 그리하여 일체의 규정적 시도를 뛰어넘는 것이라면, 현실의 초월적 움직임은 시의 초월적 움직임과 상응한다. 이 시의 움직임은 시가 표현하는 삶, 아니 그 이전에 시를 구성하는 언어와 사유와 의식, 하여 인간 자아의 움직임에서도 반복된다. 시의 움직임은 시가 표현하는 모든 대상의 움직임과 이어지는 것이다. 문광훈『시의 희생자 김수영』, 생각의 나무
옥타비오 파스와 문광훈이 말한 내용을 다시 풀어 말하자면 리듬은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태초의 제의나 신화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노래나 춤을 통해 그리고 그 속에 리듬과 어우러져서 끊임없이 이야기해 왔다. 뭇사람들의 현재의 모습을 노래했을 것이고 동시에 보이지 않는 미래가 희망적이었으면 좋겠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다른 대상들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도 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