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한무제와 고선지에 관한 레포트입니다.다양한 책과 신문 등을 참고한 레포트로 A플러스 받은 레포트입니다.
많은 도움이 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차
-----* 한무제(BC 141∼BC 87)-----Ⅰ. 들어가는 말
Ⅱ. 본론
1. 한무제의 황제지배체제의 완성
1) 국내정책- 황제를 정점으로 하는 중앙집권화
2) 대외정책-대외원정과 동서교통로의 개척
3) 무제의 대외 정벌의 역사적 의의
4) 경제적 위기와 재정 재건정책
2. 무제통치체제 의의
1) 법가적 황제지배체제 + 유가적 통치 이념 → 중국의 황제체제를 정치와 사상면에서 완성
2) 영토 확장 : 중국인 국토의 기본 윤곽 확정 및 동서교통로 개통
-----* 고선지 (高仙芝, ?~755)-----
Ⅰ. 들어가는 말
Ⅱ. 본론
1. 고구려 유민과 고선지
1) 고구려 유민의 당으로의 이주 배경과 과정
2) 고선지의 성장과 관직에서의 활동 (西征 이전)
2. 고선지의 서정(西征)
1) 시대적 배경
2) 1차 서역원정
3) 2차 서역원정과 고선지의 최후
3. 탈라스 전투로 인한 동서교류
1) 제지술의 전파
2) 나침반의 전파
3) 화약 제조술의 전파
4. 서정의 의의
Ⅲ. 결론 : 한무제와 고선지
(읽을 거리) 탈라스 평원에서 고선지 장군을 상상하다
* 참고문헌
본문내용
우리 역사속의 인물들 중에서 그 역사적인 공적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였다. 이는 역사속에서 그 인물을 보는 시각과 관점에 따라 그 평가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고선지 장군의 경우는 그 업적에 비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이에 해당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한무제는 그 업적만큼이나 후세까지 유명세를 치루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먼저 고전지 장군은 용맹한 고구려인의 기질을 갖고 망국의 비운을 통감하며 심신을 연마 당제국에서 이민족 번장으로서는 드물게 세계의 지붕이라 일컬어지는 파미르 고원을 넘나들며 서정을 단행, 중앙아시아를 평정해 대당건설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고, 동-서문화 교류사적으로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명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연구나 평가는 동•서양을 통털어 그 존재를 찾기가 힘들다. 또 그가 활약했던 당 제국에서 조차 당객랑이라는 그의 출생적인 한계와 탈라스 전투에서의 패배 때문에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더구나 그의 조국인 우리나라에서도 그에 대한 연구는 매우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프랑스의 동양학자 샤반느(Chavannes)가 종래의 중국문헌 이외에 새로이 서방•아랍 등의 문헌을 섭렵하여 고선지가 세운 탁월한 사적을 발굴해내어 밝힌 《서돌궐 사료 Document Sur les Tou - Kiue Occidentaux》가 발표하고, 또한 영국의 유명한 탐험가인 슈타인이 고선지의 전적지를 직접 답사•연구하면서 부터 고선지는 현대에 들어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천재적인 전략가로 재조명 받기 시작했다.
반면에 한무제는 중국하면 가장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인물 중 하나로 들 정도로 유명하며 그의 업적역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우선 무제는 한대에 가장 강력한 황권을 유지했다. 그는 한대 초기의 군국제가 봉국의 여러 왕들이 세력을 확장하는데 기반이 된다고 보고 실질적인 군현제를 실시함으로써 그들의 세력을 약화시켰다. 또한 법가 계열의 상홍양을 대사농으로 임명하고 그 밑에 균수관 평준관을 설치하여 중앙의 재정을 확보했다. 또한 개인이 갖고 있던 주화권을 회수하여 중앙에 귀착시키고 통일된 화폐인 오수전을 발행하였으며 소금과 철을 전매하고 상인이나 고리대금업제들에게 높은 세금을 매겨 나라의 재정 수입을 늘렸다. 대외적으로는 무제는 북방의 흉노세력에 대해 기존의 수세적인 유화정책과는 달리 공세적으로 나가 결국 흉노를 저 북쪽(바이칼호) 부근까지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아울러 장건의 서역 파견이나 동남아시아 상선 교류 등을 통해 대외 무역의 길을 개척했다. 사상적인 측면에서 동중서의 건의를 받아들여 유가 사상을 독존토록 했으며 이후 유가 사상이 봉건 왕조의 지배적인 정치사상으로 등장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이처럼 한무제와 고선지 이 둘은 각각 한나라, 당나라 건설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는 점, 동서 문화교류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지만 이 둘의 역사적인 공적에 관한 평가는 같지 않다.
따라서 역사적인 인물에 대한 보다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져야겠고 그것은 현시대가 아닌 인물이 살았던 당시시대의 관점에서 보는 연구조사에 기인할 것이라 생각된다. 보다 냉철한 연구와 철저한 사료분석을 통해서 선대의 인물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졌으면 하고 바라며 글을 마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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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 『맨 얼굴의 중국사 1』(창해,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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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
http://www.koreandb.net
http://www.blog.joins.com
http://digital.ks.ac.kr
http:/www.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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